-
-
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번역가의 에세이다.
황석희란 이름은 나에게 낯설다.
근래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기에 이 이름은 더욱 낯설다.
하지만 그가 번역한 영화 제목들은 보지 않아도 익숙한 것들이다.
오역은 번역가의 숙명 같은 것이라 완전히 피할 수 없다.
한때 한 영화 번역가의 번역에 대한 짤이 인터넷을 도배한 적이 있다.
저자는 영화, 드라마 등의 번역에 대한 오역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오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이 두 부분이 상당히 재밌다.
익숙한 이야기도 있지만 다른 시선에서 본 글들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미드 게시판은 개인이나 팀 번역으로 수많은 자막이 올라왔다.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드라마 등이 수입되기 전이라 이들의 자막을 최고의 선물이었다.
채널이 늘어나면서 갑자기 미드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야 했다.
이 자막 등에 대한 소송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확인이 필요하다.
일부 드라마의 경우 불법 자막을 그대로 넣은 것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소문과 현실의 괴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되었다.
이 정리 과정 속에 자리잡은 번역가 중 한 명이 황석희 번역가인 듯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초창기는 다큐멘터리 전문이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괜히 채널 돌리다 잠깐 본 다큐멘터리들이 떠올랐다.
번역자이다 보니 번역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많이 풀어낸다.
정역, 의역, 오역 등에 대한 글들은 나의 취향과 달리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잘 표현해준다.
대표적인 것으로 <파친코>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번역 이야기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문장을 그는 원작자 등과 의논한다.
이 의논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원작자가 동의한 최고의 정역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잘 된 번역이라도 오역이 없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비율을 정해 놓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 중 두 가지 언어를 잘 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는 아주 인상적이다.
꼼꼼하게 따지면 어색하지만 얼핏 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하는 한국말을 우리가 찰떡 같이 이해하는 것과 같다.
오래 전 선배가 번역투 문장이라고 했던 것을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할 때 이 부분은 늘 눈에 거슬렸다.
체 게바라가 했다고 알려진 문장에 대한 그의 탐구는 재밌다.
인터넷 밈이나 쇼츠로 알려진 문장 중 상당수가 정보 오류가 있음을 파고든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좋아하는데 번역가는 더 깊숙하게 들어간다.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판치는 웹에서 이런 작업들은 깨진 정신력을 일깨운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상황을 잘못 해석한다.
아이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오역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터넷 커뮤니티 이야기는 진영 논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오역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이런 글을 읽다 보면 팩트 체크의 필요성을 점점 더 많이 느낀다.
자신의 번역을 오역으로 몬 유튜브 렉카 이야기는 최근 사건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를 섞어 혐오 장사를 하는 사이버 렉카.
거의 이런 것을 보지 않지만 잘 모를 때 이런 자극적인 정보에 혹한 적이 적지 않다.
아랫집에서 사 온 성심당 빵과 다정한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다.
화려하지도 겉멋을 부리지 않는 일상과 번역 이야기는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