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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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1회 '2009 멀티 문학상' 수상작이다.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구판의 내용 일부를 덜어내고 필요한 부분을 추가했다고 한다.

세세한 부분의 차이는 사실 읽으면서 잘 알기 힘들었다.

목차가 늘어났고, 마트 장면에서 상당 부분이 삭제되었다.

마지막 문장도 새롭게 다듬었는데 취향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이 소설의 재미에, 의미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류 멸망의 순간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라면 이런 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물음도 같이.


정수는 밤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구를 처음 만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사람이 검은 구에 빨려 들어간다.

그는 놀라 도망치지만 그 어떤 신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구는 다른 사람을 흡수하고, 점점 옮겨가면서 사람을 흡수한다.

처음 구가 하나였을 때 경찰들이 구를 유인해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했다.

하지만 어느 시간이 지난 후 이 구는 둘로 분화했고, 또 다시 분화한다.

구는 결코 빠르지 않지만 일정한 속도로 벽도 통과하고, 물리적 무기로 물리칠 수도 없다.

높은 곳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하늘에서 구가 떨어진다.

구에 사람이 빨려들어가는 모습과 비명은 공포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높은 빌딩에서 다가오는 구를 피해 뛰어내린 사람의 심리가 어는 정도 이해된다.


보통은 남자로 표기되는 정수는 부모님 댁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이미 길은 수많은 차로 막혔거나 군인들이 통제하는 중이다.

힘들게 집에 도착했지만 부모님도 차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구를 피해 남쪽으로 가라고 하지만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다.

그리고 이 대혼란의 순간에 일어나는 약탈, 폭력, 살인 등이 나타난다.

인간의 공포는 이성을 무너트리고, 이기심과 탐욕을 부채질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현실에서도 함께 모여 사람들을 구하려는 조직이 있다.

구를 통제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다른 행동들을 보면 선의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의 연대는 공포와 이기심이란 작은 틈으로 인해 깨어진다.


구를 피해 다니면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남자.

이 남자를 계속해서 따라오는 구.

거리를 벌리고, 시간을 재면서 짧은 잠을 잔다.

이 강렬한 생존욕구를 보면서 감탄하고, 이 상황에서도 돈을 탐하는 사람들에 놀란다.

사실과 거짓이 판치고, 사람들은 사실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

소문과 뉴스 중에 어느 것이 더 믿을 수 있을까?

무너진 정부와 통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과거의 역사를 떠올린다.

한국에서 발생한 구가 어느 순간 전세계를 뒤덮는다.

핵무기도 통하지 않고, 공포와 절망은 최악의 선택을 하게 한다.

그런데 구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기복제하고 일정한 속도로 다가와 사람을 흡수하는 검은 구.

이 구를 피하기 위해 일어난 상황은 그 잠시의 묘사만으로도 끔찍하다.

읽으면서 혹시 했던 것 중 하나가 마지막에 사실로 밝혀진다.

하지만 이것이 왜? 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리고 남자는 왜 그렇게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어쩌면 부모님은 그가 결코 놓지 않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 아닐까?

처음 구가 나타나 인류를 멸망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82일.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불안과 공포 속에 남자는 무너진다.

이 무너지는 과정과 마지막 생존을 위한 거짓말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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