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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 정은문고 / 2024년 10월
평점 :
제목과 1979년이란 연도를 보고 생각한 것은 일본인이 본 계엄 당시 풍경이다.
이 소설에서 계엄 당시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열한 장 중 단 한 장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신이 머문 1년 동안 한국을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에 가깝다.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2022년이니 43년 전 이야기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해 쓴 글인지, 한국에 머물면서 기록한 것이 바탕인지는 모르겠다.
이 당시 서울 지리와 물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다른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본 것과 비교하면 수긍할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단어나 표현 등을 보면서 살짝 눈살을 찌 뿌린다.
대표적인 단어가 일본을 ‘내지’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가 만난 나이 많은 한국인들이 계속 이런 표현을 쓴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1978년 술자리에서 한국 유학생 양 군의 말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주인공 세노는 작가의 분신인데 실제 그의 한국 생활 당시보다 나이가 다섯 살 어리다.
한국 대학에서 일본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말에 술김에 신청했다.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은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느린 일 처리, 반일 감정이 실린 듯한 표정과 말들.
이것은 그가 한국에 있으면서 소포 등을 찾으러 갈 때 더 심하게 경험한다.
미국 친구가 영어를 사용하라고 한 대목은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과 대비되는 것 중 하나가 당시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한 사람들이다.
그가 하숙한 집주인이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내가 알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결코 일본어가 유창하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본어로 공부한 사람과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의 차이.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공부한 지식인들.
광복 후 자신들이 바라는 삶을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반일 감정 때문에 ‘일본어과’란 이름 대신 외국어과를 사용했다는 사실.
앞에 말한 일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순되는 상황 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가 한국 오기 전 서점에서 산 책들로 배운 한국의 다양한 모습처럼.
그가 가르친 학생들과의 대화 등은 그 시절 학생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몰래 그를 찾아와 일본 사회운동가의 책을 말한 학생들의 모습도 흥미롭다.
한국에 있으면서 그는 한국말을 공부하고, 한국 영화 등을 본다.
너무 오래 전에 봐서 기억도 가물거리는 영화 제목이 나오면 괜히 검색해본다.
영화는 작가의 전문 분야인데 이 당시 한국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 등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하길종 감독 관련 에피소드는 새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의 아내 전채린이 전혜린의 동생이라거나 자금난으로 촬영 중단되어 주연 여배우가 결혼했다거나.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올 때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이 귀국을 말렸다고 한다.
코플라의 <대부>와 그의 <바보들의 행진>을 생각하면 많은 아쉬움이 생긴다.
전채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료를 받는 장면 등은 영화 팬의 한 명으로 부럽다.
당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은 그의 친구들 말에서 잘 드러난다.
동시에 한국을 비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우리가 얼마나 동남아나 중국을 비하하고 무시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 그들이 알던 한국의 음식 문화는 편협했고, 무지했고 일부 사실이다.
일부 음식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을 풀어낸 장면은 옛 기억을 불러온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풍경은 신선했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일본인의 한국 기생 관광은 한국인의 동남아 매춘 관광과 이어진다.
현재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달랐던 과거 한국의 풍경과 문화를 그려낸다.
정치에 대해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오히려 일부 사실을 왜곡한다.
읽으면서 과거의 풍경과 문화 속으로 빠져들고, 다른 시각으로 본 한국의 옛 모습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