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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아일랜드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평점 :
제목을 보고 머릿속에 <배틀로얄>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잔혹한 살인 게임. 영화로만 봤다.
이 소설은 조금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집 아일랜드에 모인 단골손님 여덟 명이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한 물건들이 이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이 선택한 물건 속에는 고기와 술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무인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목적이 아니라 여행용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술집 마스터가 자신이 상속받은 무인도에 대해 말한다.
각자가 고른 세 가지 물건만 들고 무인도로 휴가를 가자고.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무인도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이 낭만은 하룻밤을 지난 후 깨어진다.
타고 온 배와 마스터가 사라졌고, 비디오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만 하나 있다.
삶이 무료했던 금수저 마스터가 10억 엔의 상금을 내걸고 생존게임을 강요한다.
여덟 명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최대 2명.
최소 6명이 죽어야 하고, 이들의 시체는 해변에 전시되어야 한다.
이 시체는 위성으로 확인 가능하고, 확인되면 무선 보트를 보내준다.
그리고 10억 엔의 상금도 생존자에게 주겠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먼저 공존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여덟 명 중 뒤틀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여덟 명의 남녀는 각각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회사원인 슈이치, 슈이치의 연인이자 부잣집 딸인 리리코.
유튜버인 유우, 공무원인 이츠키, 서바이벌 게임을 해본 대학생 스에히로.
평범한 직장인 가와카미, 과학학원 강사 요시다, 의사 아마노 등이다.
이들이 선택한 아이템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리리코가 슈이치를 선택하고,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생존에 필요한 아이템 하나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멤버 구성을 놓고 보면 상당 기간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양한 직업군과 경험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아마노가 제안한 방식은 생각보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악의와 억눌러져 있던 살의가 폭발하면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살의를 표출하는 사람.
살의를 숨긴 채 몰래 사람을 죽이는 사람.
인간의 덕목을 지키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
너무나도 무력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줄 것 같은 사람.
각각의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여덟 명의 남녀들은 생존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심리 묘사는 적나라하고 불편하게 사실적이다.
화자가 바뀌면서 각 장이 달라지는데 목차를 보여줄 수 없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져온 아이템을 보면 가장 유리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죽게 되면 죽은 사람의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누가 죽기 전 사람들은 죽은 척하는 연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명이 섬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누가 나갈지 서로 다툰다.
생존과 함께 받게 될 거액의 상금은 남은 자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터진 살인.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진실을 둔 공방, 최약자의 위치 등.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진심과 탐욕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뛰어난 가독성,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 간결하지만 잔혹한 설정.
가장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평범한 진리.
마지막까지 설정의 힘이 살아있고, 예상 외의 상황에 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