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쿠치바 전설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것과 여인 3대를 다룬다는 점이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붉게 만들어진 표지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덕분에 소녀들의 뷰티플 월드라는 단어는 겨우 지금에야 발견하게 되었다. 모두 읽고 난 지금도 이 소설이 추리소설인가 하는 점에 약간 의문이 생기는 것은 책을 읽은 분이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에 상관없이 책은 정말 매력적이다.

여인 3대의 이야기를 자신들이 직접하는 형식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인 도코가 과거를 회상하며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는 형식이다. 산사람의 자식으로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만요부터 소녀시절 한 지역을 주름잡았던 폭주족 아이언엔젤의 리더였던 게마리까지, 그리고 약간은 평범한 도코까지 3대의 이야기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과 각각의 개성과 어우러지면서 대단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빠져들게 한다.

 

3대 모두가 다른 개성과 능력을 보여준다. 만요의 능력은 미래를 보는 것이고, 게마리는 소녀만화의 거장이다. 도코의 경우 특별한 능력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지만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아간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그들이 부딪힌 사건과 삶들이 결코 평탄하지 않고, 힘들고 어렵지만 역시 그들은 그들에게 지워진 짐을 벗어버리지 않는다. 아들이 태어나는 날 아들이 죽는 것을 본 만요나 12년간 주간만화잡지에 연재를 한 게마리 모두 그 짐을 버리고 떠나가기엔 너무 책임감과 지워져 있는 짐이 무겁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고 즐거워하지만 가끔 이 소설이 추리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제 살인사건이 나오나 궁금하게 된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거창한 것도 아니고 치밀하게 계산된 것도 아니다. 다만 단서가 되는 것은 만요 자신이 죽을 당시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한 것이 전부다. 이에 손녀인 도코가 피해자를 찾는다. 탐정 놀이 같은 것이 도코의 시대에 벌어진 유일하고 특별한 일이다. 이 부분을 접하게 되면 일본에서 추리소설의 경계를 어디까지 정하는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적지 않은 분량과 삼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한 자리에서 단숨에 읽기는 조금 힘들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기 전에 손을 떼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만큼 각각 개인의 삶이 매력적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묘한 환상을 불러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시대 변화와 생활뿐만 아니라 의식 변화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카쿠치바 집안이 있는 도시의 변천사까지 담겨있어 생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대목이나 장면이 곳곳에 있다.

 

추리소설로써는 약한 부분이 있지만 너무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와 진행은 대단히 만족스럽다. 개인이 아닌 가문에 매인 삶을 살아간 그들이 약간은 불쌍하기도 하다. 그 묘한 붉은 집에서 품어내는 기운에 짓눌린 사람들의 감정을 짧게 그려낸 장면을 보면 시대 속에 이렇게 살아간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추리를 넘어 시대를 같이 그려내었고,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한 그녀들을 들여다보면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렸다. 작가의 다른 책에 관심이 가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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