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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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중 꾸준히 읽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읽지 않은 책들도 많지만 왠지 계속 눈길이 간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이와 함께 간다’는 느낌이다.

이야기는 특별한 것 없이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학창 시절 쓰리 걸스로 불린 세 여성, 리에, 다미코, 사키 등이 중심에 놓여 있다.

이 셋은 각각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리에의 귀국으로 다시 뭉친다.

평범한 일상에 자유분방한 리에는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가 다미코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부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다미코의 어머니 가오루와 사이가 좋다고 하지만 말이다.


리에는 한 번 결혼식을 올렸고, 영국에 있으면서 영국인 남편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헤어진 후 영구 귀국하면서 모든 짐을 다미코의 집으로 가져온다.

영국에서 돌아오면 다미코의 집에서 머물던 습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소설가 등으로 삶을 살아가는 다미코가 부담이 덜 되었을 것이다.

다미코의 방을 차지하고, 가져온 짐들은 복도에 놓여 있다.

그녀의 활기차고 자유로운 모습은 가오루에게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딸 다미코와 비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녀는 리에에게 호의적이다.

이렇게 셋이 사는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조금씩 확장한다.


주부인 사키의 일상은 두 아들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치매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보기 힘들어 하는 남편.

갑작스럽게 결혼 소식을 전달한 첫 아들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편함.

그녀의 삶은 안정적이지만 소소한 일상의 일들로 가득하다.

반면에 리에는 귀국 후 동생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을 어려워한다.

조카 사쿠가 귀엽지만 동생 부부는 껄끄럽기만 하다.

리에와 사쿠의 관계와 사쿠의 약간 특이한 행동은 닮은 듯하면서 재밌다.

성공적인 경력과 자유분방한 삶은 사쿠의 엄마에게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다.


다미코의 일상은 글쓰기와 약간의 대외활동으로 가득하다.

상당히 정적인 삶이었는데 리에가 오면서 그 삶이 조금씩 변한다.

리에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와인이 자리한 것인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술 취향이라 하면 간단하지만 적지 않은 와인이 집에 있는 것을 보면 의외의 상황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만나게 된 과거의 남친은 또 어떤가.

그때와 다른 모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기에 죽은 친구가 남긴 딸 마도카의 일상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8년 사귄 남친이 청혼을 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이 불안감을 털어낸 장면은 흔하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간단하지만 많은 장면 전환을 한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로 등장인물이 바뀐 것을 알게 되지만 그것을 아는 것은 이름 때문이다.

이런 전환은 잠깐만 딴 생각을 하면 뭐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초반에 이런 빠른 장면 전환 때문에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을 통해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간결하게 풀어낸다.

소소한 일상의 단면들이 다른 시각에서 풀려나온다.

각각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아가는 세 여성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이 파편화된 일상과 강력한 관계는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 일상과 닮아 있을 것이다.

곳곳에 담담하고 섬세하게 다룬 일상의 장면과 감정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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