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입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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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소설이다.

읽기 전에 놀랐던 것은 ‘미스터리·호러 단편선’이란 부제다.

내가 알던 작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전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가 쓴 미스터리와 호러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첫 단편을 읽고 마지막 장에 이르면서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읽는 동안 잊고 있던 것이 한순간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은 다른 단편들로 이어지면서 처음 같은 재미를 주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엮이고 꼬인 이야기와 관계들 속에서 나 자신이 허우적거렸기 때문이다.

그 단편들은 연작이었고, 읽으면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단편들이 먼저 잡지 등에 발표된 것과 달리 이 연작들은 이번에 처음 발표했다.


먼저 발표된 작품들은 <자작나무 숲>, <빈집>, <소송>, <그해 여름의 수기> 등 네 편이다.

<자작나무 숲>은 호더 할머니의 손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전에 본 방송 이미지와 연결되었다.

작가가 이야기 속에 깔아둔 설정은 무심코 지나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놀란다.

나의 선입견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생긴 착각이다.

<빈집>은 중년의 아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엇갈리는 둘의 관계,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상상력을 부풀린다.

<소송>은 제목 탓인지 카프카의 소설이 계속 머릿속에 따라다녔다.

소송 내용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말하다 마지막에 끔찍한 사건 하나가 튀어나온다.

이 사건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상상이었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지만 전자에 무게를 둔다.

<그해 여름의 수기>에서 수기는 사람 이름이다.

수기가 겪은 그해 여름 이야기와 현재의 삶이 뒤섞이는데 중간에 낀 하나의 장면이 눈길을 끈다.

자고 있는 수기를 내려다보고 다가온 명기의 모습.

떨어지는 두 사람과 이미지의 혼란은 쉽게 머릿속에서 섞여 풀려나오지 않는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제목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가 기대한 방식의 이야기 전개와 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작소설이란 것을 몰랐기에 자꾸 동장하는 탐정 안찬기와 흰옷 입은 여자가 의문을 던진다.

역시 반복해서 등장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도 의혹으로 가득하기는 마찬가지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망한 후 생긴 캘리포니아 모텔은 또 다른 이야기의 무대가 된다.

작가의 딸이 빠져 죽은 저수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작품의 인용 등이 엮인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 역할은 전직 형사 출신 안찬기다.

탐정 안찬기는 나중에 캘리포니아 모텔에서 발생한 사건에 또 등장한다.

이런 그의 등장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명탐정의 모습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처럼 모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다.


연작이다 보니 화자는 다른 사람으로 넘어간다.

이 이야기에 나온 사람들은 사람에 따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장면을 마주한다.

문을 열지 말라고 했을 때 경험하는 것이 다른 것도 흥미롭다.

몰카로 본 것과 현실의 사건 사이의 괴리는 해석이 나오지만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호텔리어 아버지가 죽은 딸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시의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일한다.

그런데 죽은 딸은 누굴까? 흰옷 입은 여자일까? 진주일까?

진주라면 시간의 순서가 맞지 않다. 내가 놓친 것들이 너무 많다.

자살로 판명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흰옷 입은 여자는 누굴까?

<섬>에서 말하는 안찬기의 죽음은 진짜일까?

형사가 방문한 하인도가 만들어낸 환상은 아닐까?

전직 형사 안찬기가 등장하는 장편이 있다고 하니 한 번 관심을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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