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어른이 되는 법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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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장편은 정말 오랜만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앤솔로지에 참여한 단편만 읽었다.

이전에 장편만 읽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다.

옛날에 사 놓은 몇 권의 장편들은 집안 어딘가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언젠가 깨어 다시 한 번 달릴 예정인데 언제가 될지는 늘 그렇듯이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사실 조금 의외의 설정이었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몇 번이나 죽는 소녀를 화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웹판타지의 환생이나 회귀물과 다른 전개란 점이다.

항상 아기로 태어나지만 죽는 시점은 모두 다르고, 예상 외의 변수도 있다.


여섯 번의 회귀. 전생의 기억들. 각각 다른 죽는 시기.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인물은 정소영 의사다.

정소영은 같은 시간에 다시 시작하지만 외모는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재이의 회차가 반복될수록 그녀의 외모는 점점 더 늙어간다.

20대여야 할 외모가 할머니가 된 회차를 볼 때 작가에게 의문을 던진다.

왜 정소영만 반복되는 회귀 속에 노화를 선물한 것일까 하고.

그리고 그녀의 삶 속에 담긴 우리 사회의 연령별 여성의 삶을 엿본다.

이것은 재이가 아이와 소녀의 시기를 반복하는 것과 대비되는 설정이다.

읽으면서 가장 먹먹한 감정을 느끼게 한 것도 당연히 정소영이다.


재이가 몇 번이나 회귀하면서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 죽음들이 누군가의 살인에 의한 것도 있지만 사소한 부주의인 경우도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한 번 바꾼다고 평온한 삶이 찾아오지 않는다.

삶에 변수는 수없이 많고, 위기도 끊임없이 찾아온다.

하나의 위기를 넘었다고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위험은 또 찾아온다.

읽다 보면 도대체 몇 번의 죽음이 있어야 어른이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한 소녀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어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지도 보여준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정소영이다.

그녀가 보여준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은 소녀를 위한 것이다.


소영과 함께 어느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이 아이는 재이와 함께 자라지만 어느 순간 오토모드를 변해 이상한 말을 한다.

이 아이가 한 말은 재이가 살아남기 위한 단서가 된다.

재밌는 점은 아이가 이렇게 된 원인을 해결하는 인물이 정소영이란 사실이다.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을 바로잡는 역할을 그녀가 한다.

아이는 자라 소년이 되고, 재이와 함께 커플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재이가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른이라는 세계.

사실 그 세계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멋진지는 살아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죽음을 경험한 재이에게 그 세계는 반드시 거처야 할 단계다.

이 단계는 그 시간을 지나온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뻔한 회귀물이 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소녀란 시기에 한정애 그것을 피해갔다.

횟수마저 제한을 두면서 이 설정에 무게를 더했다.

한 번 경험한 죽음을 다시 피하지만 그 기억이 만사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다회차 회귀에서 그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여전히 부모다.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불륜, 가정 불화 등이 재이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아기를 넘어, 아이가 되고, 청소년기를 보낼 때도 부모는 말로 모든 것을 한다.

물론 아이가 하는 이상한 말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는 하지만 일시적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부모란 위치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예상과 조금 다른 설정과 전개이지만 재미는 여전하고, 여운은 더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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