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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에게 ㅣ 그래픽 노블 1
이루리 지음, 모지애 그림 / 이루리북스 / 2024년 7월
평점 :
작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을 떠난 작은 형을 그리면 쓴 글이다.
이때 작은 형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고,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 가던 중이었다.
작가 후기에 이 부분이 간략하게 나오는데 이 그래픽노블의 한 장면과 겹쳐진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가진 작은 형에 대한 기억과 추모의 감정이 담긴 책이다.
작가의 후기는 형제자매와 함께 자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다.
이미 글로 출간된 내용이지만 작가 이름의 출판사 브랜드의 첫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책을 받고 먼저 놀랐는데 대충 그림을 훑어보고는 살짝 취향을 탔다.
하지만 자세를 잡고 읽기 시작하면서 이 취향은 조금씩 바뀌었고, 어느새 빠져들었다.
몇몇 장면은 내 기억 속 영화 등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재밌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왔을 때 그 간단한 한 마디에 눈시울을 붉혔다.
시작은 고전 명작 SF만화 <기생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우주에서 뭔가가 날아와 창문을 툭 치고, 아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식탐을 부리고, 가족들에게 막말을 하고, 상을 뒤집는다.
아이는 아버지 등에 올라탄 괴물을 봤고, 손으로 그 괴물을 꺼내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괴물이 올라탄 큰형에게 끌려 나오고, 자신의 방으로 물러난다.
이때 작은 형이 동생에게 괴물을 봤는지 묻는다.
자신은 오래 전 그 괴물을 봤다고 말하는데 창밖에 무수히 많은 괴물들이 보인다.
이 순간 우주 괴물이 지금 온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임을 암시한다.
두 형제는 곳곳에 있는 이 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한다.
불로 태워 보려고 하고, 올가미를 던져 뽑아내려고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마지막 올가미 작전은 사람 목에 걸리면서 경찰서까지 가는 일이 생긴다.
그런데 우연히 목욕탕에 가서 비눗물에 괴물들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본다.
두 형제는 열심히 어른들의 등을 비누 거품으로 밀어 괴물을 녹여낸다.
이 장면을 보고 비누 거품총을 든 두 형제가 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을 떠올렸다.
보통의 SF소설이라면 이런 활극도 가능했겠지만 작가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이 유쾌한 장면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잠시 암울해진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는 장면과 비극이 교차한다.
작가의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 모지애 작가는 솔직히 낯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처음에는 그림체가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많이 나아가면서 세세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들의 모습이 모두 다르고, 정확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맟추었다는 것을 말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체가 아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한 그림체다.
물론 내가 이 그림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고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
그리고 원작을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그림작가의 연출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원작을 읽지 않은 나에게 마지막 형이 남긴 편지와 그 울림은 정말 멋지고 강렬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흔하고 쉬운 단어인 ‘사랑해’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이 단어가 가진 힘은 진심일 때, 그 단어를 받은 사람의 가슴을 울릴 때 세상의 모든 괴물을 물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