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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킹버드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처음 만나는 작가다. 1984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작가의 소설 중 <퀸스 갬빗>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 때문에 소설이 번역되었고, 이번에 작가의 다른 책들도 같이 나왔다.
<퀸스 갬빗> 이전에 그의 소설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당구 영화들은 모두 봤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 기억을 더듬었는데 상당히 다르게 다가온다.
영화의 원작을 읽으면서 영화를 떠올리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이 호기심은 이번 작품이 보여준 세계관과 건조한 문장들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말과 관련된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류의 멸종이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상당히 놀랐다.
제목의 모킹버드는 ‘흉내지빠귀새'를 가리킨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앵무새 죽이기>의 원제목에도 ‘Mockingbird’가 들어 있다.
이 흉내지빠귀새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나온다.
이 400여년 뒤 미래에 인간들은 쓰기도, 읽기도 하지 못한다.
작가는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책의 출간 부수가 얼마되지 않는 시기에 나온 한 책에서 이 시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인류는 안드로이드, 로봇 등을 만들어내면서 노동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메이커 시리즈는 각각의 목적에 맞게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
가장 최종 버전인 메이커 나인은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 장은 자살을 바라고 가장 높은 빌딩에 올라간 스포포스의 아픔을 보여준다.
벤틀리. 글자를 읽지 못하는 시대에 혼자 독학으로 읽기를 배운 인간이다.
그의 능력은 도시 관리자인 스포포스에게 알려지고 더 많은 읽기의 기회를 얻는다.
이 시대 사람들은 신용카드로 먹을 것을 사고, 대마초를 피고, 최면제를 먹는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 누리지만 자아는 사라졌다.
벤틀리는 무성영화를 보고, 일기는 적는다. 책은 귀해 구하기 힘들다.
그러다 메리 루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면서 점점 더 자아가 생성되기 시작한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알게 되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벤틀리에게 시련을 주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한다.
벤틀리가 감옥에 갇히고, 탈옥한 후 이야기는 변해버린 이 세계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벤틀리를 통해 진행한다.
스포포스와 메리 루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적다.
벤틀리와 메리 루가 동거를 하면서 메리 루도 읽기를 배운다.
스포포스는 이것을 바라지 않고, 둘을 헤어지게 하고, 벤틀리를 감옥에 보낸다.
스포포스의 장이 적지 않지만 분량만 놓고 보면 얼마되지 않는다.
메이커 나인 로봇인 스포포스는 행동하는 로봇이 아니라 관리하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메리 루와 스포포스가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몇 가지 이야기는 현재진행중인 세계를 잘 보여준다.
오로지 오락과 유흥만 바란 인류가 멸종을 향해 가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스포포스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도 알려준다.
인간이 오락과 유흥을 쫓으면서 동물처럼 변했다면 로봇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도시를 유지 보수 관리하는데 최적화된 로봇이지만 고독은 그를 짓누른다.
죽기를 바라는 로봇, 로봇이 제공하는 약을 먹고 분신하는 사람들.
이 엇갈린 두 종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읽기를 배우면서 생각하는 힘을 가진 벤틀리는 주어진 세계를 조금씩 바꾼다.
이 바꿈이 느리지만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끊임없이 제공되는 약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이성은 마비되고, 생식 능력도 사라진다.
종말의 한 단면을 보여준 장면에서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이 떠올랐다.
인류의 종말을 이런 식으로 풀어낸 작가는 처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