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벌새 ㅣ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11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엘렌 베클랭 그림, 문현임 옮김 / 북극곰 / 2024년 6월
평점 :
2023 스위스 청소년 도서상 수상작이다.
투박하고 간결한 선으로 가득한 그래픽노블이다.
이 그림체는 예쁜 그림에 익숙한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내용과 잘 어울린다.
간단하게 대충 그린 듯하지만 구도나 표현 방식은 충분히 시선을 끌어당긴다.
어쩌면 그림체 때문에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그래픽노블을 볼 때면 처음에는 뭐지? 하지만 금방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나의 편견을 바로잡아준다.
바닷가 마을에서 온 가족이 도시로 이사를 왔다.
셀레스틴은 이사 온 집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 앉는다.
이런 셀레스틴에게 옆집 소녀 로뜨가 말을 건다.
둘은 친구가 되어 옥상에서 자주 만난다.
로뜨는 겨울이 되면 이 도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현실은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다 옥상에 있는 셀레스틴 앞에 날개를 단 사람이 바람을 타고 나타난다.
그는 셀레스틴의 형인데 실제는 죽었다.
형이 벌새 한 마리를 죽고 가는데 이 부분 때문에 현실과 환상의 교차가 일어난다.
이 환상은 셀레스틴이 느끼는 삶의 아픔과 고통이다.
작은 벌새 한 마리를 되살리기 위한 두 소년 소녀의 노력.
벌새의 특징으로 두 청소년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상황들.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두 청소년들의 사랑 이야기.
구구절절 풀어내는 대신 생략과 여백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면 불친절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과 행동과 닮아 있다.
옥상 가장자리에 앉은 두 아이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높은 곳이 두려운 나의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두 아이들의 불안감을 표현한 것일까?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은 난간 대신 옥상 가운데 앉아 벌새를 돌본다.
이런 공간의 이동에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소년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보다 나이가 더 많아진다.
이런 소년의 성장과 형에 대한 강렬한 기억들이 엮여 있다.
형이 늘 함께 있기를 바란 셀레스틴의 바람이 만들어낸 형의 환상.
그리고 이제 그 자리를 조용하게 파고 들어 연인이 된 로뜨.
두 아이의 입 속 박테리아가 결코 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로뜨.
하지만 이 둘의 첫 사랑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소년의 정체되어 있던 시간은 사랑으로 깨어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읽다가 놓친 색감의 변화는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담담한 글과 이에 맞춘 듯한 그림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