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소위 말하는 유행이니 패션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나에겐 이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브랜드가 하나의 암호처럼 느껴진다.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 책에 나오는 의상이나 신발이나 백들은 너무 유명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처음 듣거나 그냥 평범한 상표가 아닌가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 무지가 이 책에 대한 재미를 조금은 낮추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작가의 재미있는 표현과 위트 넘치는 문장들은 나의 시선을 계속해서 붙잡아둔다.

 

직장 초년생이 부딪치는 현실은 사실 엄청나게 힘겹다.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졸리고 집에 오면 힘에 부치고 피곤해 쉽게 잠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같은 경우라면 잠조차 제대로 자는 것이 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힘겹게 회사 생활을 하였다고 약간은 말하는 나에게 여기에선 소위 명함도 내밀 수 없다. 100만 명이 원하는 직장이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앤드리아보다 그런 자리에 있다 자리를 옮겨간 사람이나 에밀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너무 뚜렷한 목표의식 때문인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다 보면 너는 해고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직장에서 사람을 저렇게 쉽게 해고하다니 한국의 수많은 사장들이 본다면 부러워할만한 상황이다. 덕분에 피고용인은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상황에 따라 분노하고 가끔은 즐거워하고 통쾌해하면서 보게 된다. 이 상황을 전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자주 보다보면 당연한 장면처럼 느껴지니 나도 적응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직장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언제나 인간관계다. 일이 힘든 경우도 많지만 역시 대부분 사람이 떠나게 되는 경우는 상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다. 하지만 이 소설은 좋지 않은 경우를 넘어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편집장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와 앤드리아의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우릴 즐겁게 한다. 그녀가 사고로 죽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이 죽일 수 없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보며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편집장의 부름에 응하는 그녀를 보면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된다.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잡지의 편집장이라는 것만으로 그녀가 누리는 엄청난 혜택은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편집장의 비서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누리는 엄청난 물질적 혜택은 그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샘물 같다. 일반 여성이라면 눈을 부릅뜨고 부러워할만한 상표들이 그녀에겐 공짜로 제공되는 것이다. 나중에 1년도 되지 않은 경력에서 얻은 옷을 헌옷가게에 판 돈만 3만불이 넘어가니 대단하지 않은가? 헌옷이 이러니 새옷이라면 어떻겠는가? 물론 나에게 이런 금전적 혜택이 있지만 이런 상사를 모셔라고 한다면 당연히 사직서를 던지고 나올 것이다.

 

작가의 이력에 보그 편집장 어시스턴트였다고 하는데 그 경험이 바탕이 된 모양이다. 실화에 가깝다는 해설을 보면 미국 대기업의 회장들이 누리는 엄청난 혜택과 연봉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 회장이 연초 인사 자리에서 자신의 직원들을 가리켜 우리 하인이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생각나는데 이 소설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닌가 한다. 선진국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미국에서 이런 정도라면 한국에선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책 겉장에 뉴스메이커 편집장에 글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미국에서조차 꿈을 위해서라면 피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강추한다는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벌어지는 상황들이 피나게 노력하는 장면인지 거대한 자본과 권력 앞에 한 인간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놀랍다. 한 잡지의 편집장이 본 것이 녹녹하지 않은 사회생활에만 그친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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