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자 친구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제목만으론 도저히 미스터리 소설이라곤 생각하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그 중 한 편이 이 소설이다. 처음 이 소설에 대한 평을 보았을 때 제목으로 인한 편견이 무너지면서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만족이다.

여섯 편의 단편이 보여주는 살인과 죽음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살의들의 총합과도 같다는 느낌을 준다. 생활하는 동안 쌓여간 분노나 의심 등이 살의로 발전하고, 그것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삶의 냉혹함과 잔인함을 느끼게 된다. 일상의 평온함 속에 숨겨진 그 욕망이 마지막 장면에서 밝혀지는 순간 살인의 의미를 잃게 되는 장면은 허망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각각의 단편들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주는 느낌은 모두 다르다. ‘추락’이나 ‘잘못된 사망 장소’는 살인의 섬뜩함보다 그 뒤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극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의 결과가 전혀 예상 밖의 결말로 이어지는 전환은 그들의 섬세한 감정을 넘어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보살 같은 여자’와 ‘종막’은 삶 속에 숨겨진 감정과 살의가 잘 계산된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그 목적이나 결말은 다르지만 해당되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진실이 현실에 의해 왜곡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도된 살인을 알지만 현실의 부를 위해 입을 다물거나 숨겨졌다고 생각한 불륜이 사실은 모두가 아는 일이라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비극임을 알게 된다.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나 ‘아내의 여자 친구’는 잃지 않기 위해 펼친 살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여운을 강하게 남긴다. 일상에서 남들이 불어넣어준 의심이 과거의 이력과 마주치고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과 결합하는 순간 살의는 살인으로 옮겨가게 되고, 불편한 아내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실행한 살인이 그 가정을 잃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은 여자의 강한 인내와 냉혹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살의와 마주한다. 그 실행은 사실 힘들고 대부분 생각에서 그친다. 그 한계 용량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살인과 죽음들은 많은 경우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경우가 많다. 만약 치밀한 살인 계획을 세운다하더라도 실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인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극히 일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살인 그 자체나 배경보다 그 뒤에 펼쳐지는 사실이나 현실적인 요소들이 더 와 닿는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한 일들이 그것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되는 현실을 보면 더욱 현실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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