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그래픽노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프랑시스 메티비에.이자 피통 지음, 이세진 옮김 / 지와사랑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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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그래픽노블로 풀어내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는 철학사를 다룬 소설이나 철학사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핵심만 간단히 요약한 내용만 대충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잊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한 번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처럼 손이 나가지 않았다.

지적 허영이 극에 달했던 20대였다면 이해는 못해도 읽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 책이 그래픽노블로 나왔다고 하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혹시 만화라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더불어.

하지만 예상한만큼의 문을 열지는 못하고 살짝 엿보는 정도에서 머물렀다.


제목에 나오는 표상과 의지, 인식과 예술, 생명체와 도덕은 살짝 엿보는데 도움을 주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두 가지 원칙은 제목과 이어진다.

첫 번째 원칙은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두 번째 원칙은 “세계는 나의 의지다.”

이때 첫 번째 원칙은 물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가 지각하는 대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지는 모든 표상 너머의 물자체라고 생각했다.

상당히 어려운 표현인데 저자들은 만화로 조금 더 쉽게 설명한다.

쉽다고 해도 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오면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생각나는데 의지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분류한 예술은 순위가 있다.

가장 낮은 것은 건축, 다음은 정원과 풍경화, 조각, 풍속화, 알레고리, 시, 노래, 음악 순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하나씩 하는데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은 아니다.

현대시와 현대 음악으로 넘어오면 왠지 모르게 그가 이해하고 풀어낸 내용과 상충하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나의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독일 수도 있다.

음악을 세계의 의지와 비슷한 것으로 본 이유는 인간이 없어도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음악은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음악과는 다르다.

재밌는 대목은 음악을 하는 정신이 철학하는 줄 모르지만 형이상학을 연습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도덕의 장에서 “인생은 곧 고통이다.”란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일체가 고(苦)’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생무상이란 단어 때문에 불교를 허무주의로 본 것과 비슷하다.

기독교 세계에서 신이란 절대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고통을 내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절대적인 진리나 신의 존재를 생각하면 이런 철학은 용인하기 쉽지 않다.

욕망과 권태, 고통을 사라지게 할 관조 등이 눈길을 끈다.

모든 고통이 욕망에서 온다는 부분도 불교를 연상시킨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면서 몇 가지 개념을 돌아본다.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많지만 철학책보다는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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