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사항 보고서 네오픽션 ON시리즈 21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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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를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나의 저질 기억력은 이 재미와 작가를 잠시 잊고 있었다.

작가의 이력을 본 후 그 기억의 일부가 살아났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아주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조금 의외의 장소와 상황을 다룬다.

무장 강도들이 들어온 곳이 고용센터 실업고용과이기 때문이다.

은행처럼 현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 와서 받은 개수모 때문에 총을 들고 왔다고 말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변명과 그들의 용의주도한 도주와 엇갈린 정보들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금요일 퇴근 시간을 앞두고 가상의 도시 주안시 고용센터 실업급여과.

복면은 쓰고 총을 든 두 명의 테러범이 이곳에 들어온다.

직원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말한다.

그러다 한 직원에게 총을 쏘면서 결코 장난이 아님을 알린다.

테러범이 주장하는 이 과에서 받은 수모의 실체는 말하지 않으면서.

보통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황이 뒤바뀌었다.

매뉴얼에 의해 이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직원들의 갑질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오래 전 내가 방문한 그곳은 오히려 기계적인 느낌이 더 강했는데 바뀐 것일까?

범인들이 달아난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총에 맞은 이안은 4번 창구 직원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병실에서 유체이탈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을 엿본다.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다른 창구 직원들의 삶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실업고용과는 불행한 사람들만 모인 곳 같다.

이안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실업고용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양한 이유로 이 과에 와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사람들.

이렇게 매년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 중에는 이안의 부모님도 존재한다.

정규직으로 오랫동안 다닐 수 없기에 매번 이들은 이곳에 온 것이다.

물론 불법수급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


영혼으로 다른 직원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이안.

이안의 SNS를 팔로잉하면서 그녀의 삶을 엿보던 2번 창구 직원 호찬.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패딩 때문에 집이 불탄 기억이 있다.

이후 집을 구하지 않고 캠핑카에서 살아간다.

그와 이안이 접촉한 순간 이안을 볼 수 있게 된다.

영혼 상태의 이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호찬.

이 둘은 같은 과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그날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지운다.

그리고 각 창구 직원들은 이 사건과 관련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는 경찰에 넘어가서 사건 수사의 기초 자료가 된다.


특이한 하나의 사건,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사연들.

이안이란 특이한 존재의 등장, 실업급여과를 찾아오는 많은 민원인들의 사연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잘 보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 사연과 함께 풀려나가는 것은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한 정체다.

고용센터 CCTV 자료가 사라진 것도 내부자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비현실적인 존재와 현실의 사건 수사가 겹쳐 있는데 어느 순간 엇나간다.

이 엇나감이 현실과 이어지는 부분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가독성, 재미, 진한 여운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에도 이전과 같이 기억해야 할 작가이고,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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