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지음 / 고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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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가다.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생각보다 많은 책을 내었다.

최근 한국 sf작가들이 많이 등장해 이전에 비해 읽을 거리가 월등히 늘어났다.

한국 sf소설의 출간을 따라 읽는 것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정도다.

개인적으로 아주 반가운 현상이고, 천천히 조금씩 따라간다.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집에 사 놓은 장편에 대한 기대가 부쩍 늘어났는데 언제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


열 편의 단편 소설은 두 편을 제외하면 모두 독립적인 이야기다.

연작의 형태를 가진 두 편은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와 <브레인 크런치>이다.

전편은 한국의 부동산 열풍을 미래의 블랙 코미디로 만들었다.

뒤편은 부동산 투자 실패 후 바뀐 삶을 현실적으로 엮었다.

이 두 편을 보면서 나의 과학적 한계와 의문을 동시에 느꼈다.

전편에서 태양이 멈출 때 생기는 태양계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과학적인가 하는 부분 때문이다.

뒤편은 인류의 스승들의 인공 뇌가 격렬한 토론 끝에 도출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뭐 실제 작가가 이런 부분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단편은 모두 세 편이다.

<블랙홀 뺑소니>, <빛보다 빠른 빚>, <사이버 피쉬 트럭>등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빛보다 빠른 빚>은 읽으면서 정말 끔찍하게 느꼈다.

빚을 받아내기 위해 인간의 죽음마저 거부하는 추심이라니!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빚이 가족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영원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가족 중 누군가가 빚을 떠안아야 한다.

물에 빠져서도, 목을 메어서도, 전철에 몸을 던져도, 거대한 바퀴에 몸을 던져도 죽지 못한다.

메모리나 다른 무엇인가가 있으며 살려내고 이때 발생한 비용을 청구해 빚이 늘어난다.

이처럼 암울하고 현실적인 삶은 결코 상상력에만 기댄 것이 아니다.


<블랙홀 뺑소니>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과 한국 보험대리인의 대결을 다룬다.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주장하는 내용은 순수한 과학적 사고실험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주장인데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살짝 유머를 섞어 풀어내면서 가벼운 긴장감을 실어주는데 상당히 재밌다.

<사이버 피쉬 트럭>은 지구가 방사능 오염으로 먹거리가 전멸한 이후를 다룬다.

이전처럼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먹을 것을 잡거나 채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때 등장한 그레이 구는 아주 훌륭한 대체 식량이자 기초 원재료가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레이 구 운송업자인데 차량 전복 사고로 당한다.

이때 차 밖으로 나온 그레이 구에게 신체 일부를 먹혔다.

이런 그레이 구와 인류가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들이 어둡고 서늘한 기운을 풍긴다.


표제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는 중간에 집중을 못해 흐름을 잊었다.

영이란 숫자와 다중 우주의 존재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경매>는 너무 짧게 끝났고, 기억을 둘러 싼 슬픈 이야기가 작은 울림을 만들었다.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은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보다 더 심하고 위급한 상황을 다루지만 코로나 19 초기의 심화 버전으로 다가온다.

<맛과 맛 사이>에서 마지막에 발굴한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뜨거운 얼음을 만드는 방법>은 공룡 알 부화와 인류세의 종말을 엮었다.

장난감 공룡 알을 현실화시켜 풀어가는 이야기가 묵직하면서 답답하다.

이렇게 각각 다른 분위기의 단편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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