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친절한 거짓말 - 총리가 된 하녀의 특별한 선택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오현주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에 대한 설명을 읽고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대통령이 한 명 있다.

바로 6.25전쟁 당시 국민들에게 거짓말하고 한강 다리를 폭파한 이승만이다.

거대한 성곽도시 프레스토를 지배하는 총리도 거짓말을 하고, 기차를 타고 달아난다.

결정적 차이 하나가 있는데 이 기차가 폭우와 거센 물길에 전복되어 총리가 죽은 것이다.

2개 동안 계속 내린 비는 성곽 밖을 물에 잠기게 하고, 이제는 성곽 안마저도 위험하다.

기상학자들이 이 비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온다.

하지만 총리는 날씨가 좋아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달아난다.

남편과 하녀 글로리아와 애완견을 데리고 기차를 타려고 하다 저지당한다.

총리 혼자 죽게 된 데는 그녀의 욕심이, 거짓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총리 남편도 애완견 데이지를 기차 위에 올리려고 하다 타지 못했다.

총리 관저로 돌아와 그들은 다시 일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하지만 비상 시국은 총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총리의 남편 티모르는 비슷한 체격의 하녀 글로리아에게 총리 역할을 하게 한다.

총리인 자신의 아내가 곧 돌아와 원래의 업무를 맡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녀 글로리아가 총리가 된 사건의 전말이다.

그리고 잠깐 동안 하려고 했던 대역이 어느 순간 그녀의 일상이 된다.

정치를 몰랐던 그녀는 티모르의 도움을 받아 정치인 흉내를 낸다.

이 일이 가능한 데는 평소 총리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안하고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도, 영향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티모르가 훌륭한 조언자로 옆에서 도와준 것이다.

그가 그 일이 의미하는 바와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알려주면서 그녀의 시야가 확장된다.

단순히 얼굴 마담 같은 역할을 하다가 기지를 발휘하면서 지지도가 올라간다.

민중에게 한 발 다가간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녀의 인기는 더 높아진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 한 곳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가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자신의 선택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게 되면서 그 무게를 더욱 심하게 느낀다.

고민하고 배우고 움직이는 와중에 그녀는 성장한다.


글로리아의 이야기와 더불어 프레스토 북쪽의 홍수로 가족과 헤어진 개 하인즈가 나온다.

가족들과 함께 가지 못한 이유는 하인즈가 개라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홍수로 파괴된 마을에서 들개들이 돌아다닌다.

야생으로 돌아간 하인즈는 사람들과 살 때 몰랐던 위험과 위기를 겪는다.

자신을 극진하게 돌봐주었던 클렘을 찾아가는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이 여정에 어쩌다 동반하게 된 작은 강아지 내차야 씨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하인즈의 모험은 결코 단발성이 아니고 이 모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설 곳곳에 정치와 언론의 문제, 자본가의 착취 같은 문제들이 드러난다.

식탁 용품 제조가 핵심인 도시에서 공장이 물에 잠기면서 모든 인력을 물 퍼내는 데 동원된다.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고, 공장과 시민들을 공동운명체처럼 묶는다.

그런데 공장주나 자본가들 중 누가 나와서 노동자들처럼 지하로 내려가서 물을 퍼냈는가?

시민들이 공장으로 들어가면서 생긴 빈집을 터는 도시 경비대는 어떤가?

점점 높아지는 물의 수위, 교묘하게 편집된 신문 기사.

특히 소설 속에 나오는 신문의 교묘한 변화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를 뒤섞어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물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상류 댐을 폭파하려고 한다.

물길을 나누면 수우가 낮아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쪽 도시는 어떻게 될까? 합의는 된 것일까?


작가는 재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장면들을 늘어놓았다.

계속해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자신들의 권력과 자본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바뀌고, 다른 시각에서 이 사건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뀔 뿐이다.

총리가 된 하녀를 둘러싼 비밀과 이 비밀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순수한 마음으로 상황을 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녀.

단순히 순수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들.

선택과 결정, 그 이후에 따라오는 책임을 보여준다.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생긴 문제들 또한 다룬다.

몇몇은 예상 가능한 길로 갔지만 대부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최악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멋진 블랙 코미디를 아주 재밌게 풀어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