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실시 일상신비 사건집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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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앤솔로지다.

‘일상신비’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코지 미스터리를 다룬다.

이 모음집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무거운 듯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다.

사건이 아닌 사고로, 혹은 장난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사건들이 나온다.

다섯 명의 작가 중 기존에 읽었던 작가는 단 한 명, 범유진뿐이다.

다른 네 명의 작가들은 그들이 참여한 단편집만 겨우 알 뿐이다.

같은 작가들이 참여한 <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도 같이 출간되었다.


범유진의 <달면 삼키는 안다정>은 가장 안정적인 단편이다.

게으르지만 단 것만 먹으면 그 에너지로 잠시 활발해지는 인물이 안다정이다.

어릴 때 먹은 초콜릿과 달달한 빵은 그녀를 제빵사로 만든다.

하지만 손 부상 후 단맛을 잃었다가 친구의 동네 빵집 허실당에서 그 입맛을 찾는다.

즉시 채용, 알고 보니 친구가 허실당 주인의 아들.

이 빵집의 유명한 빵은 모두 김 명장이 개발한 것들이다.

이런 빵집에 프렌차이즈에서 제품 개발 협업 요청이 들어온다.

담당자와 회의하는 도중 담당이 메탄올 중독 현상을 보이고, 김 명장이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학창 시절 친구의 사건을 해결한 전력으로 탐정 역할을 배정받는다.

작은 도시의 이권, 빵집 내부의 알력, 약간은 쉬운 트릭 등이 재밌게 진행된다.


그린레보의 <내 세상의 챔피언>은 슬픈 현실을 다룬다.

한 향토 사학자의 말로 시작해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을 보여준다.

동네 사랑방 같은 카페, 서로 너무 다른 자매.

승승장구한 후 서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언니.

특별한 재능도 열정도 끈기도 없어 보이는 동생.

술 취해 동생에게 5만 원을 팁처럼 준 노인을 쫓아간 후 전기충격으로 실신한 노인.

그 노인의 나쁜 손버릇,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부자.

사건 해결을 위해 탐정이 된 자매.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에서 발견한 단서.

하나의 사건 속에 담긴 중의적인 이야기들과 좌절과 연대. 마지막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다.


김영민의 <작당모의 카페 사진동아리의 육교 미스터리>는 재밌지만 아쉽다.

사건이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면서 왠지 모르게 너무 쉽게 봉합되는 느낌이다.

짝사랑하는 동창의 부탁으로 과거 사건 재조사를 의뢰받은 화자.

불충분한 단서, 막막한 조사. 하지만 사건 현장을 본 후 생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 사진동아리가 모이는 카페는 상당히 재밌다.

새로운 신입의 통통 튀는 행동, 뭔가 다음에 다른 무언가 생길 듯한 분위기.

아마추어의 재조사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 등도 현실적이다.


박하루의 <돌아다니는 남자>는 보고 싶은 데로 보는 사람들 이야기다.

인구 20만 명이면 그렇게 작은 도시가 아닌데 그렇게 설정했다.

이 도시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그냥 서 있는 남자.

중학생 둘이 이 서 있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고, 이 남자를 제각각 다른 시선에서 해석하고 이해한다.

여기에 중간 매개 역할을 하는 향토 사학자는 다른 이야기에서도 등장한 인물이다.

중학생들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들은 재밌고 한 편의 우화 같다.


장마리의 <둘리 음악 학원 신발 실종 사건>은 소문과 연대 이야기다.

정확한 명칭은 두리 음악 학원이지만 만화 ‘둘리’외 비슷한 발음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이 학원에는 며칠 동안 원생들의 신발이 사라진 사건이 네 건 있었다.

신발은 잃은 아이들은 신발을 잃어도 찾아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부모들은 학원의 폭력이나 왕따 등을 걱정한다.

그러다 한 원생이 다른 음악 학원으로 옮기고, 위기감이 고조된다.

원장은 알바에게 사건 해결 시 보너스를 약속하며 수사를 의뢰한다.

현실적인 문제들과 아이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멋진 우정과 연대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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