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월드
야즈키 미치코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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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역전 미러링 소설이다. 현재 남녀의 위치가 뒤바뀌어 있다.

한국보다 남녀 차별이 더 심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차이는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소설은 이 위치를 바꿔 이야기를 풀어간다.

호칭은 그대로 남편과 아내이지만 현재 남성처럼 외부 활동은 아내가 담당한다.

한국의 수많은 맞벌이 부부를 떠올리면 많이 어색한 부분이 있다.

차별의 대상이 여자가 아닌 남자로 바뀌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작가는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마지막에 가면 여남평등이나 현실에서 연대 등의 상황이 나오면서 희망의 불씨를 던진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는 현실에서 단순히 남녀를 바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차별 받는 남성을 현재의 여성으로 대입하면 현재의 우리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남성우월주의가 여기선 여성우월주의로 바뀌었다.

성희롱과 성폭력의 대상이 남성이 된다. 순결도 남성에게만 문제가 된다.

한 어린 남학생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아이가 당한 성폭행보다 자신의 안면이 더 중요한 아내의 모습은 너무 낯익다.

남성 동료 교사나 남성 이발사에 대한 성희롱도 마찬가지다. 낯 뜨거운 장면들이다.

만약 현재의 여성들이 이런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충격적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성의 역전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남성들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정의 주부로 살아가는 이 남성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의 엄마들과 닮았다.

정치 문제로 넘어가면 자민당의 오랜 집권으로 늙은 정치인의 스캔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이들은 모두 여자다. 현실에서는 남성 정치인들이 실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성 스캔들이 터졌을 때 아내가 보여주는 반응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정치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 또한 현실의 반영이다.

작가는 현실의 불합리한 부분들을 곳곳에서 끌고 와 소설 속 에피소드로 녹여내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낯익다.


현재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도 남성으로 옮겨졌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단어를 남성의 적은 남성으로 바꾸어 사용한다.

남성끼리 갈등이 생기고, 아내는 남일 쳐다보듯 한다.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남녀 역전으로 상황을 환기시킨다.

독박 육아, 경력 단절, 이혼과 홀로서기, 성범죄 노출 등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재밌는 설정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아주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점이다.

체력 등은 남성이 우월하지만 이 처벌이 단순한 힘의 우위를 지워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성 폭행, 성 희롱 등은 남성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상당히 좋은 가독성을 보여준다.

남녀 역전 소설로 보지 않고 현실의 반영으로 읽어도 문제없다.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마지막 에피소드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세상을 바꾸는 큰 흐름을 만든다.

현재 이런 사회를 만들려는 사람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조금 과한 기대를 한 탓이 있지만 아쉬운 대목도 많다.

미러링을 넘어선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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