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에 ‘현대 요리책의 시초’라는 문구가 있다. 아주 매력적인 문구다.

요리책을 거의 읽지 않지만 가끔 레시피가 적힌 것들은 찾아본다.

내가 요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궁금해서 찾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이야 블로그나 인스타 등으로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종이를 통해 알았다.

자취를 할 때면 이런 레시피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뭐 거의 해 먹지는 않았지만.

요리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적힌 계량 등에 대한 불만이다.

요리 방송을 볼 때도 이 불만은 존재한다. 집에 계량 컵 등이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오는 방송이나 요리책은 예전보다 쉬운 편이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해도 맛이 없는 것은 나의 손맛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프렌차이즈 식당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최근에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도 다른 집에서 요리하면 실수를 한다고 한다.

도구와 불의 세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도 그런데 과거의 요리는 어떻겠는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주방 상황인데 말이다.

그리고 일라이저 이전의 요리책들은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요리책이 아니었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한 시인 지망 여성의 좌절과 새로운 도전의 순간을 잘 보여준다.


소설은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첫 부분은 일라이저와 함께 요리를 만들었던 주방 보조 하녀였던 앤의 현재 이야기다.

앤은 밤에는 한 남자의 정부고, 낮에는 그 남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같은 존재다.

이런 그녀에게 한 권의 요리책이 선물로 전달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요리책의 상당 부분은 미스 일라이저의 요리책을 표절한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두 여인이 어떻게 만났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 작가는 앤의 존재를 더 부각시킨다.

이 시대의 다양한 계층을 이해하는데 좀더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일라이저는 여성 시인으로 시집을 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요리책 집필을 의뢰받는다.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파산이 그녀의 삶을 살짝 비튼다.

앤은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고 있고, 줄로 앤과 연결되어 있다.

줄이 풀려 나체로 마을을 돌아다닌 전력이 있다.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를 잃었고, 엄마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한 적이 있다.

이런 둘이 하나의 접점을 이루게 되는 것은 일라이저와 엄마가 하숙집 보다이크 하우스를 연 것이다.

일라이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앤은 주방 하녀로 고용이 되었다.

이 둘이 좋은 콤비가 되는 데는 앤의 아주 탁월한 미각이 한몫 했다.


일라이저가 예전 집을 떠나면서 기존의 요리책에 불만을 품었다.

자신이 쓰는 레시피에서 시의 가능성을 본 것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다.

부정확하고 불명확한 기존의 요리책을 뛰어넘는 요리책을 집필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력은 결코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설 말미에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한다. 대단한 열정과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요리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두 여성의 삶과 현실에 지면을 할애한다.

서로 비밀을 숨기고 있다가 하나씩 교환하면서 생기는 연대 의식은 또 어떤가.

그 시대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작가의 노력은 멋지다.


솔직히 말해 미스 일라이저의 레시피가 나오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재료 손질하는 법과 요리 도구 등도 지금과 많이 다르다.

몇 가지 음식을 제외하면 나의 입맛을 돋우는 요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요리책에는 영국의 가정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들의 레시피가 담겨 있다.

일라이저가 이 책 집필에 열의를 다하는 것도 점점 사라지는 영국 요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 것도 이 책에 나온다.

그 맛없는 요리의 이유는 재료와 전통 음식에 대한 전승 부족 탓이다.

부분적으로 상당히 가독성이 좋지만 교차하는 두 여인의 삶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요리책 집필의 초기 부분만 다루는 것도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서로 다른 계급 여성의 우정과 연대는 놀랍고 재밌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일라이저의 열정과 매력적인 음식 묘사는 아주 매력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