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 몇 년의 기간 동안 많은 영화를 보았는데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또한 비디오로 보았다. 살포시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한 영화다. 물론 지금은 정확한 영화의 스토리나 세부적인 사항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 당시 좋아했던 배우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로 기억하는데 감독도 같이 한 모양이다. 뭐 좋은 소설들이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영화를 본 직후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생각보다 많은 소설들이 그렇다.

 

작가에 대한 프로필을 볼 때면 언제나 그의 정확한 정체가 나오지 않는다. 추정되는 사람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닌 듯하다.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 에밀 아자르가 생각나는 것은 로맹 가리라는 작가의 또 다른 필명인 것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도 다른 이름으로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밝혀졌다. 하지만 이 작가만은 죽은 지금도 정확한 신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로드니 휘태커 박사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번역된 책도 많지 않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니콜라이’에서나 ‘메인 스트리트’에서나 그 주인공들은 체제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아이거빙벽’의 주인공 헴록박사는 미술사 교수지만 암살자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간다. 본업은 교수지만 부업은 암살자다. 암살은 단순히 돈을 위한 것이고, 그 돈을 저축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집이나 그림을 사기위해 필요할 뿐이다. 자신이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타고난 감식안으로 미술품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은 상당히 메말라있는 인물이다. 살인을 해도 그 여파로 겪는 감성적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그는 없다. 그 일 자체에 흥미가 없지만 돈이 필요해 움직인다.

 

그의 성장에 대한 기록을 보고, 하는 일은 생각하면서 그와 유사한 특징을 지닌 니콜라이가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살인에 대한 타고난 재능을 가진 두 사람이 묘하게 비교되면서 조금 다른 특별함이 있다. 니콜라이가 러시아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일본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신만의 특성을 살려내었다면 조나단은 미국의 하층민으로 자라난 후 감상적인 여자의 덕분에 성장하고 공부하게 된 인물이다.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직업뿐만 아니라 언어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것과 감성적으로 메말라있다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대단한 수준에 있다는 점도 유사한 점이다.

 

아이거빙벽을 최후의 장소로 벌이는 이 소설에서 암벽등반이 하나의 좋은 소재로 이용되었다면 ‘니콜라이’에서는 동굴탐험이라는 취미가 등장한다. 물론 두 취미가 자세히 묘사되면서 긴장감을 높여준다. 전문 분야에 대한 작가의 연구와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기묘한 성격과 더불어 땅의 아래 위를 배경으로 멋진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영상으로 다시 또 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였다.

 

‘아이거빙벽’을 보면서 몇 가지 것이 생각났다. CII와 SS라는 조직에 대한 것이다. CII가 CIA에 대한 패러디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SS라는 조직이다. CII가 만든 수색과 처형이라는 목적을 지닌 이 단체가 왠지 모르게 독일의 특수조직인 SS가 생각났다면 나의 심한 비약일까? 단어가 같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일이 법치국가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법의 판결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그들의 모습은 조직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스파이와 관련된 소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냉전의 시기에 과연 그런 일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몇몇 장면에서 문화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 탓인지 모르지만 불편한 장면이 있었다. 남편이 죽은 것을 안 그날 다른 사람과 잠을 자는 풍경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거빙벽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보기위해 모인 부유한 사람들의 형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면서 느끼는 스릴과 흥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역겹다. 사실보다 충격적인 사건을 바라는 매체나 이 엄청난 도전을 구경꺼리로 만들어 돈을 버는 호텔 측도 놀랍다. 작가가 곳곳에 냉소와 유머를 드러내는데 그 부분은 대단하다. 시기적으로 현대 스릴러와 같은 속도감이나 긴장감이 덜할지 모르지만 멋진 장면들에 묘사와 독특한 주인공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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