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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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작가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 제목은 기억하고 있었다.

왠지 손이 잘 나가지 않은 작가였는데 ‘태평양전쟁의 강제동원희생자’란 소재가 나를 끌어당겼다.

한국, 일본, 북한을 배경으로 한다고 하지만 주요 무대는 일본이다.

단순히 한국 피해자만 그려내지 않고 ‘납북 일본인 문제’까지 같이 엮었다.

근현대사의 비극을 뒤섞고, 상상력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호기심을 자아냈다.

다만 일본 유일의 적통 공주 아이코 납치를 둘러싼 설정은 조금 과도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납치를 정치적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부분도 조금 아쉽다.


이야기의 시작과 마무리를 1991년으로 정해 놓았다.

이 해에 일어난 사건 중 하나가 그레타 박이란 실체가 없는 인물을 둘러싼 의혹이다.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유리코 실종 사건과 이 그레타 박을 연결해서 생각한 형사가 있었다.

그는 아키라다. 하지만 그의 수사는 난관에 부딪히고 결국 경찰 옷을 벗는다.

이후 그는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살아간다. 그의 아들도 이곳에서 일한다.

그런데 이 아들 신이치가 한글로 온 의뢰를 아버지 몰래 처리한다.

이 의뢰는 일본 귀족 학교 가쿠슈인에 대한 정보 요청이다.

의뢰자는 문준기, 그는 강제동원희생자 문수용의 손자다.

문수용은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 끌려가 매몰 사고로 생매장당해 죽었다.

준기의 목적은 일왕 공주 아이코 납치를 통해 이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해결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탄광 착취 문제를 다룬 일본 소설이 있다.

미쓰다 신조의 <검은 얼굴의 여우>다. 이 소설에서 상당히 사실적으로 다루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고호 작가는 탄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설명하지 않는다.

이 당시 탄광 관리자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인 상황만 알려줄 뿐이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유일한 적통 공주가 납치된 상황이지만 소설 속에서 그렇게 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공주의 자발적인 동조가 하나의 이유이지만 어떻게든 공주를 찾겠다는 의지를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공주의 모습도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 정도에서 멈추어 있다.

문수용의 유골에 집착하면서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인물에게 오히려 역습을 받는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으려는 준기와 준기를 통해 납치된 유리코의 행방을 찾으려는 의문의 인물.

전직 형사 아키라, 현직 경찰청 에이스 형사 히데오.

일본의 전쟁 범죄와 북한의 납북 일본인 문제.

작가는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이야기를 같이 늘어놓고, 뒤섞고, 풀어낸다.

이 과정에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은 결코 나에게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그리고 경찰 에이스의 직관과 통찰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면서 그가 질타한 ‘명탐정 코난’을 떠올린다.

개인적으로 이 전, 현직 형사들의 뛰어난 실력에 반감을 느낀다. 나만 그런 것일까?

경찰 수사가 얼마나 많은 인원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지 이미 봤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에 민감하기에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 작가의 필력은 아주 좋다. 잘 읽히고, 상상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교묘하게 구성한 설정도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할아버지 유골에 집착하면서 어느 순간 유리코의 과거를 좇게 되는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놓치고, 뛰어난 추리와 관찰이 필요한 것에는 탁월한 실력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이 좋게 보면 그렇구나 할 수 있지만 아이코에 비하면 너무 떨어진다.

세부적인 곳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전체적으로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언제 시간나면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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