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아는 사람들
정서영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녀를 다룬다고 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가모우 미치루’였다.

이야기의 전개도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가는 제목대로 희대의 악녀인 강슬지를 아는 사람들의 회고담으로 채웠다.

한 남자 고등학생과 여사감이 달아났다는 뉴스를 보고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슬지를 어릴 때 왕따 시킨 사람도 있고, 우연히 만나 이야기만 나눈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녀의 악의와 행동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이다.

읽으면서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강렬한 의지와 행동에 먼저 서늘함을 느낀다.


슬지의 외모에 대한 묘사를 보면 결코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아니 예쁜 편이다.

그녀의 외모에 혹한 남자가 썸을 타려고 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놀라 도망갔다.

이런 그녀가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녀의 잘못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친구 주주다.

슬지의 표현을 빌리면 인형 같이 예쁜 소녀였다. 그녀의 주도로 학창 시절 계속 왕따였다.

첫 이야기의 주자가 주주인 것은 그녀의 뒤틀린 삶이 이때부터였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그녀가 바란 것은 주주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주주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제대로 된 경험이 없다.

이때 슬지의 연락은 과거를 돌아보고 소설 쓰기 소재 찾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때 슬지가 주주에게 행하는 복수는 소소하다. 하지만 나중에 그녀가 던진 미끼를 문 그녀는 크게 당한다.


슬지는 계속해서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방법에 문제가 있다.

아주 극단적이고 무섭다. 농담과 순간적 기분에 의한 표현을 사실과 구분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할 때 정말 그 사람을 칼로 찌른다.

카페에 찾아온 손님에게 성추행하는 사장을 복수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교묘한 살인법이다.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말하는데 알바생에게 그 정도 극단적인 일은 아니다.

직장내 괴롭힘을 둘러싼 대처법은 또 어떤가. 또 다른 살인법이다.

재밌는 점은 이 살인법이 추리문학작가 등용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외모에 혹한 남성이 슬지의 일기를 발견하고 읽는다.

한 선배에 대한 풋풋한 사랑으로 시직한 이야기는 뒤로 기면서 점점 강렬한 집착과 악의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 악의가 그녀의 상상의 기록이 아니라 현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에 드러나는 사실은 왜 이 기록이 그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는지 보여준다.

바닷가 남자 이야기와 이어진 회사에서 뒤틀린 욕망이 빚어내는 악의는 앞에 나온 주주의 이야기와 겹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주가 자신의 욕망에 흔들리면서 사건을 불러왔다면 이 핑크 공주는 아니란 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슬지의 삶에 전환기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그네 귀신 이야기’ 속 진우와의 만남과 대화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누군가와 친해지길 바라는지 잘 나온다.

또 시골 쥐를 좋아하는 슬지에게 쥐가 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이 이후 그녀의 태도가 변한다.

그 중 하나가 남학생과 함께 달아나면서 전국적인 방송을 탄 사건이다.

그 남학생이 엄마에게 건 전화를 그대로 믿는 것도 현실성이 없지만 마무리는 더욱 그렇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연작 소설처럼 슬지 시리즈가 더 나와 우리 삶의 다른 면을 더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