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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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에서 <짝사랑>1.2권, <아내를 사랑한 여자>로 나왔었던 소설이다.

이번에 다른 번역자와 함께 돌아왔다. 단순한 표지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번역이라 더 반갑다.

1999년과 2000년에 일본에서 연재된 소설이 <짝사랑>이란 제목으로 두 권으로 나왔었다.

인터넷에서 표지를 보고 잠시 그 책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를 사랑한 여자>란 제목으로 나왔을 때는 같은 소설이란 것을 몰랐다.

최근에 개정판에 대한 정보가 잘 나와 그 흔적을 따라가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한국 주류 방송에서 LGBT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언제일까?

홍석천이 동성애자라고 알린 것도 큰 일이지만 하리수의 트랜스젠더 부분이 더 강하게 떠오른다.

아마 그 당시는 트랜스젠더를 잘 몰랐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방송에 나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식이 사람들의 모든 의식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한 발 내딛게 한 것이다. 이것도 아주 큰 일이었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으로 가면 어떨까? 내 친구나 지인이라면?


이 소설 속 주인공 데쓰로는 10년 만에 당시 여자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이 만남 이전에 데쓰로는 미식축구부 동기들과 추억을 씹으면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데쓰로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졌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10년 동안 계속 반복되는 그들만의 추억팔이다.

귀가하려고 한 순간에 나타난 미쓰키는 말 대신 글자로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데쓰로는 자신이 집이 가깝고, 아내가 출장 중이라고 말한 후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두 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둘 모두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하나는 미쓰키가 성정체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그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다.

남성 호르몬을 맞고, 남자처럼 운동하면서 근육을 키웠다.

호르몬 탓인지 근육도 많이 붙었고, 목소리도 변했다. 무심코 보면 남자처럼 보인다.

가출 후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데 여직원을 스토커하는 남자가 있었다.

보통의 남자처럼 그 여성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그만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이 소설의 두 번째 사건이 여기서 나온다.

그녀/그는 자수하기 전 짝사랑했던 여자 리사코를 만나기 위해 동기 모임 밖에서 어슬렁거린 것이다.


이 기묘한 상황에서 자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은데 그들은 자수를 말린다.

남자로 살아온 그녀의 흔적을 감안하면 여자처럼 다닌다면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쓰키는 여자의 몸이 싫고, 여자의 옷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은 남자인데 여성의 옷과 행동을 강요한 삶을 이제는 완전히 벗고 싶은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성정체성 장애 문제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것을 한 사람의 살인 사건과 연결하고, 조금씩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인정할 수 없었던 부모의 모습까지.


지금은 모르지만 일본의 남녀 차별은 한국보다 더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좀더 세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둘이 막하막하이겠지만 표면적으로 일본이 조금 더 심한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일을 하지만 여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아니 더 좋아도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소설 속 시간 대로 보면 1990년대 인 듯한데 아마 한국도 그 당시는 그랬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쌓이고 겹치면서 남자인 마음이 여자의 허물을 벗게 한 것이다.

물론 반대로 남자의 몸이지만 여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소설은 단순히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문제만 나열하지 않고 조금 더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하나의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성정체성 장애 문제를 뫼비우스의 띠로 풀어낸 부분이나 남녀의 마음 비율 등은 가슴에 콕 와 닿는다.

이런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살인 사건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긴박하고 재밌다.

단순해 보이는 살인 사건의 이면은 또 다른 사실을 품고 있다.

숨겨온 과거는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이 알거나 짐작하는 일이 되었다.

억지로 이 상황을 봉합하기 위한 설정을 펼치지 않은 것도 좋았다.

최근 초기작들을 가끔 만나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아주 큰 편차를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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