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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강지영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8월
평점 :
느와르를 소재로 한 앤솔로지다. 한국 장르소설에서 유명한 다섯 작가가 참여했다.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이지만 프랑스 암흑가 영화로 더 낯익다. 이에 대한 개념으로 “어둡고 진지하고 비정한 분위기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섯 편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그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 다섯 편 중에서 암흑가를 다루지 않는 소설도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표제작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이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지만 코믹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도 표제작이다.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소설인가? 아니다. 자기소개서다. 느와르 작가가 프리랜서를 그만 두고 정규직으로 가려고 쓴 이력서다. 그가 지원한 회사는 스토리 창작 회사다. 그런데 이 이력서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실제 그가 취직한 곳은 조폭들이 일한다. 그의 자소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내용이 들어 있다. 평범한 소설가가 조폭 회사에 취직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다 읽고 글을 쓰는 지금 옛날 주성치 영화가 떠올랐다. 나만 그런 것일까?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있으니 끝까지 즐길 수 있다.
강지영의 <네고시에이터 최보람>은 분위기만 놓고 보면 가장 느와르스럽다. 네고시에이터란 직업이 경찰 조직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 속에서는 사설 직업이다. 그녀는 식물의 삶을 바라지만 현재 돈이 부족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선배를 만난다. 누가 아이를 납치했는지 바로 안다. 그녀가 속한 조직은 이런 일에 특화된 회사다. 그녀가 할 일은 범인을 잡는 일이 아니라 범인과 피납치 가족 사이의 중재 역할이다. 몸값을 상식선에서 산정해 납치범의 요구를 맞춘다. 당연히 이 사건도 선배의 계좌 정보 등을 이용해 최대한 계산한다. 그런데 납치범이 다른 대리인을 내세워 금액을 확 올린다. 피해자 조부의 재산을 포함해서 말이다.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인연이 나타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마주한다.
윤자영의 <중고차 파는 여자>는 제목 그대로 중고차를 파는 여성 딜러 왕지혜가 주인공이다. 학교 선생인 김현철이 중고차 사기를 당한 후 왕지혜를 소개받았다. 그녀의 활약으로 기존 계약을 해지한다. 이때 활약은 아주 멋지다. 문제는 허술한 김현철이 자식의 자동차 사고 때문에 피해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이기에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 합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왕지혜가 탐정처럼 움직이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다. 왕지혜의 행동은 대담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정직성은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 이 매력적인 자동차 딜러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조영주의 <아주 독립 못한 형사> 속 나영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한 인물인 모양이다. 처음 나영이 팀장에서 정직당한 후 6개월 동안 삼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의 능력이 이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좌천한 그녀를 둘러싼 다른 경찰의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나영이 책을 사는 서점 주인 안 약사의 의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마구 대하는 이경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굉장히 답답했다. 안 약사의 책방 단골이자 유명한 음악 작곡가의 실종을 수사하는 이야기는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작들을 읽고 작가가 주석을 단 내용을 확인해보고 싶다.
정명섭의 <작열통>은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건의 가해자 부모들이 탄 버스가 납치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정적이다. 버스에 탄 부모들이 모두 한 자리하거나 돈이 많다. 처음엔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가면 그 실체가 나온다. 잔인한 학교 폭력인데 여기서 한 번 더 비틀었다. 진실이 말소된 현실에서 피해자 가족의 반격은 치밀하고 잔혹하다. 작열통의 사전적 의미는 사지에 외상을 입었을 때 그 말단부가 불에 타는 듯이 따갑고 아픈 통증이다. 먼저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은 이것을 능가한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예상을 뛰어넘었고, 그 고통은 이제 멈춘다. 장편으로 개작해서 내용을 더 다듬었으면 좋겠다. 그럼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