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저벨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 나온 링커 우주를 다룬 연작 소설이다. 링커 우주라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간은 행성 크루소 하나다. 이 행성의 크기나 기후적 특징은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 이야기에서 풀어낸 링커 바이러스의 영향과 올리비에 등은 그대로 나온다. 재밌는 것은 여전히 이 행성에서 진화를 하는 것이 인류라는 점이다. 만약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읽지 않았다면 좀더 낯설 수도 있다. 링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다면 그 책 속 <안개 바다>도 좋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모두 네 편이 실려 있다. 소형 함선 제저벨을 타고 항해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첫 단편 <로즈 셀라비>의 함장 이야기는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행성간 이동을 위해 필요한 아자니를 받아주는 올리비에가 없어 다른 행성으로 나갈 수 없다는 설정에 눈길이 간다. 인류가 낡은 차를 개조해서 아자니를 타고 링커 우주 속으로 날아간 것과 비교하면 이 행성은 현재 지구와 비슷하다. 갇혔다고 하기엔 행성은 크고, 다양한 대륙 등에서 삶은 계속 이어진다. 도서관 큐브를 둘러싼 이야기인데 다른 연작들처럼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반전처럼 펼쳐진다. 갑자기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현재의 자가격리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 규모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소문과 음모가 뒤섞여 있는데 왠지 머리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시드니>는 제저벨의 이야기꾼 의사를 구해준 인물의 별명이다. 본명인가? 그가 어떻게 구함을 받았는지 들려주는데 재밌다. 더 재밌는 설정은 토요일을 두고 두 진영이 2차 대전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러시아로 나누어서. 의사와 제저벨 승무원은 시드니가 요청한 일을 하기 위해 이 대륙에 간다. 황당한 설정이 이어지고, 그 삶에 빠져든 사람들이 나온다. 게임이라고 했지만 죽을 수 있다. 실제 많이 죽는다. 의사 일행은 시드니가 부탁한 일이 단순히 섹스 인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 진영에 간다. 그리고 이 세계 속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름도 상당히 직관적이다. 블랙 지하드, 교회 마피아 등처럼.


<레벤튼>은 제저벨 항해사의 고향이다. 생존을 위한 실험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단편 속에서 무시무시한 벌레가 등장한다. 한 과학자가 만든 말씀이 입력된 벌레다. 종의 오염을 막아준다고 하면서 교회 마피아에 팔았다. 자신들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수장은 이 벌레를 산다. 단순히 괴이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의 종교와 엮으면, 정치와 엮으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파생되고, 바로 떠오른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다 보니 기존 세계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을 수 없다. 낯선 이름, 기이한 모습, 링커 바이러스의 변이 등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섞인다. 그리고 이전 편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연결된다. 천천히 읽으면서 관계도 등을 그려야 했을까?


<호가스>에서는 <시드니>에 나왔던 로봇이 또 등장한다. 호가스 베들레헴 수용소에 갇힌 42호가 바로 그 시드니다. 로봇 시드니의 경험담이 흘러나오고, 링커 기계의 핵심인 올리비에에 대한 이해와 의문이 더 깊어진다. ‘로저 셀라비’ 호에서 제저벨 선장이 본 올리비에가 다시 등장한다. 이 기계가 함선을 개조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한 것은 한 편의 멋진 호러물 같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기존 학설과 다른 존재가 발견된다.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이전에 나왔던 인물이나 상황이 새롭게 해석되고, 또 다른 이야기의 가지가 펼쳐진다. 혼란스럽지만 이상하게 끌리고, 세부적인 부분들이 재밌다. 작가가 이 링커 우주를 어디까지 끌고 가서 확장할 지 궁금하다. 언젠가 올리비에의 정체도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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