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최근 이런 공모전이 늘어났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겐 좋은 일이다. 이 소설의 설정 자체가 놀랍고 신선하다. 아주 큰 주택이 지옥의 리모델링 때문에 빈방을 임차했다고 하니 대단한 발상이다. 당연히 일반 주택이라면 집 주인이 지옥에게 방을 내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집은 아주 낡았고, 세입자도 겨우 두 명 뿐이다. 집 주인 할머니는 건강에 문제가 있고, 어릴 때부터 이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서주는 세 주는 일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전혀 혈연 관계가 없는 서주는 하숙 일을 도우며 살아갈 뿐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현재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면서 등록금을 모으는 중이다.


지옥에 세를 주면 어떻게 될까? 그 첫 장면은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망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가 먹고 있는 음식들은 오래 전 거지들이나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다. 그는 지옥에서 생전에 남긴 음식을 먹는 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이나 장면에서 놀라고 기겁하겠지만 서주는 깜짝 놀라는 수준에서 멈춘다. 다른 빈방에서는 지옥의 형벌을 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정상적(?)이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이지만 집을 떠나면 갈 곳도, 돈도 없는 서주에겐 유일한 쉼터다. 그리고 집 없이 떠돌던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고 키워준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저녁 알바를 나가는 그녀를 할머니는 취직할 줄 안다.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서주를 좋아하는 연하남이 있다. 그의 노골적인 대시를 서주는 거부한다. 현실이 삶이 버거운 그녀에게 연애는 어쩌면 사치다. 식당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면서 누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는 집이 어떤지 알기에 더욱 거부한다. 어느 밤 늦게 집에 가니 대문이 잠겨 있다. 담을 넘는다. 다른 문도 잠겨 있다.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 끝에 방법을 하나 발견한다. 그 문으로 들어가니 지옥도가 펼쳐진다. 악마가 사람을 고문하는 중이다. 기겁할 일이지만 그냥 인사하고 지나간다. 이때 본 악마가 출근하기 전 미숫가루를 타 놓았던 의문의 인물이다. 그 미숫가루를 먹고 뱃속에서 탈이 났지만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 안면은 튼다. 뿔을 단 악마가 계약할 때 부엌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미숫가루미 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냥 알고 있던 악마가 자꾸 마주치다 보니 조금 가까워진다. 집밖에서 싸움이 나면 악마는 맛있게 그 싸움을 먹는다. 그의 존재는 나중에 서주를 짝사랑하는 승빈이 억지로 바래다줄 때 연적처럼 보인다. 승빈의 마음은 서주를 향하지만 그녀는 일상의 힘겨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식당가를 배회하는 의문의 사람은 서주가 생각할 때 할머니의 둘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할머니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첫째 아들이 집으로 숨었을 때 경찰이 와 잡아간 후 집에 경찰을 들이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만약 둘째 아들이 집에 쳐들어와도 서주는 경찰에 쉽게 연락하지 못한다.


할머니는 말한다. 지금 세상이 지옥이라고. 세 준 지옥의 풍경보다 현실 세계가 더 지옥 같은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현실이 더 지옥 같을 것이다. 서주는 집 안팎에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아들과 할머니의 건강 때문이다. 할머니의 건강검진을 위해 알바로 모은 돈을 쓸 생각도 한다. 착하다. 어쩌면 외로운지 모른다. 홀로 남겨진 외로움 때문에, 갈 곳 없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더 애정을 쏟는지 모른다. 그녀 주변에 있는 모카 언니나 짝사랑 연하남 승빈이 있지만 쉽게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정체도 밝힐 수 없는 현실이라니.


지옥이 나온다고 해서 참혹한 장면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문안으로 보이는 지옥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옥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그 지옥을 벗어난 사람들이 집에 나타나고, 그를 데리고 다시 들어가는 악마가 있다. 그런데 그 악마가 서주와 이상한 관계를 맺는다. 집주인 가족에 대한 호의라고 하기에도, 그녀의 결핍을 먹는다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그리고 서주도 이 악마가 현실의 사람보다 더 마음이 간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의 예상은 심사평에 나온 것처럼 조금씩 빗나간다. 웃픈 현실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계속 끌어당긴다. 황당하지만 코믹하고 아련한 소설이다. 소설 후반부 악마의 존재는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를 매혹시킨다. 미니 시리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지옥 풍경 때문에 공중파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