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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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없는 이스라엘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 <우연 제작자들>을 보지 않았지만 좋은 평을 받은 것을 봤기에 선택했다.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쉽게 빗나갔다. 생각보다 더딘 초반 전개에 약간 곤혹스러웠다. 작가가 그려낸 세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문장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단계를 넘어가자 소설이 나에게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왜 나는 출판사 소개글처럼 초판 몰입도에 깊게 빠지지 못했을까? 솔직히 말해 이런 도입부는 그렇게 아주 기발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내 이름이 나오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면 어떨까? 소설 속 주인공 벤은 서점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들고 나온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은 그렇게 산 책을 펼쳐 읽는 자신을 묘사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현실과 책 속 내용이 같다. 그리고 그가 이 이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흘러나온다. 울프라는 친하지만 친밀하지 않은 노인이 남긴 위스키 두 병을 유산으로 받고, 책을 사고, 집에 온다. 집밖에 수상한 누군가가 있지 않았다면 책 속 내용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내용이 현실이 되고, 술병에 적힌 이름을 찾아 ‘바 없는 바’라는 술집까지 온다.


‘바 없는 바’의 오스나트는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일했다. 가끔 이상한 이름의 술을 찾는 사람이 찾아오면 주인 벤처 부인에게 데리고 간다. 그녀가 일하는 밤 중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낯선 남자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술은 마신 후 갑자기 둘은 연인처럼 대화를 나눈다. 이 상황이 나에겐 너무 이상했다. 나중에 이 상황을 이해할 이야기가 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설의 핵심인 ‘경험’의 강렬함을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간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둘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고, 남자가 넣은 경험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만약 스테판이 넣은 양이 많았다면 평생 그 경험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이 경험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나오고, 벤처 부인에게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이야기의 문이 나에게도 열렸다.


경험과 기억은 다르다. 작가는 이 부분을 강조한다. 울프는 사람들의 경험을 축출해서 술에 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동에서 경험한 것을 뽑아 술에 넣는다. 이 술을 마신 사람은 경험자들과 똑 같은 경험을 한다. 이 경험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 있고, 그 강렬함은 경험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 설정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몇 가지 가상현실이나 대체경험 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 그 사람이 한 것을 경험한다. 조금 황당한 설정이긴 하지만 벤이 다양한 무술 등의 경험을 마시면서 뛰어난 실력자인 스테판과 싸우면서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준다. 경험이 근육의 기억까지 새롭게 재구성해주지 않는 한 사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울프가 개척한 경험의 축출과 실제적인 대리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진다. 위험한 곳으로, 자신이 원한 곳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혹은 시간 문제 등으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술 한 잔으로 그 경험을 그대로 간직한다. 당연히 더 자극적인 경험을 찾는 사람이 생기고,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오길 바라는 사람도 나타난다. 이 경험 대리가 하나의 사업으로 발전하고, 거대한 부를 이룰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권력을 실제 권력자들이 쥐고 있고, 이들의 성장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현실 속에 이들을 죽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스테판이다. 그가 왜, 어떻게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오스나트를 홀린 술의 원천도.


울프가 남긴 술병을 우연히 얻은 벤, 그 술병을 얻었지만 방치한 오스나트, 그 술병을 뺏으려는 스테판. 이렇게 세 명의 남녀들은 서로 엮이고 꼬인다. 악역의 스테판에게 대항하는 벤과 오스나트. 하지만 오스나트의 경험 속에는 아직 스테판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남아 있다. 술이 약한 벤. 그는 경험이 가득 든 술의 힘으로 놀라운 실력을 얻는다. 이전에 묘사한 삶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들이 울프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은 강렬한 액션을 동반하고, 반전을 품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다. 제목 그대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안내서다. 벤과 오스나트는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책 속에 넣어 여운을 남긴다. 초반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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