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익은 작가들이 참여한 고3을 주인공으로 한 앤솔로지다. 이 앤솔로지 속 고3은 나의 고3과 많이 다르다.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세 명의 작가는 낯익지만 홍선주 작가는 나의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는다. 매년 주변에 고3 수험생이나 재수생들이 있다. 그들의 하루 일과를 들으면 더 심해진 일정에 놀란다. 그리고 살짝 의문을 품는다. 그 일정 내내 그들은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할까? 하고. 나이가 들면서 학벌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낮아진다. 바뀌고 있는 세상을 생각하면 기존의 학벌이 아이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 앤솔로지 속 네 명의 고3은 솔직히 말해 기성세대의 고3과 다르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와 생각에 더 빨려 들어간다.


범유진의 <겨울이 죽었다>는 첫 문장도 ‘겨울이 죽었다’이다. 쌍둥이 동생의 이름이 겨울이다. 겨울이 죽은 이유는 한때 언론에 잠시 나왔던 현장실습생 자살과 연결된다. 통신사 콜센터에 배정되어 부당한 지시와 감정 노동으로 겨울이 자살했다. 같이 나간 친구들은 미안하다 말만 하고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부당한 현실에 부모들의 대응도 원인 파악보다 합의로 넘어갔다. 고3인 가을은 수능시험장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사건을 다시 되살리려고 한다. 읽다 보면 너무 현실적인 상황들에 먹먹하다. 성적과 학교의 취업률 때문에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린 청소년들을 보면서 나의 마음을 다잡는다. 붕어빵을 파는 서점 아저씨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혀진다.


표제작 <어느 멋진 날>은 정명섭의 소설이다. 고3이 된 고동철은 16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키에 몸무게 80킬로그램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는 앗싸다. 집은 어머니가 겨우 집안을 유지하고 있다. 불안불안한 상태다. 이런 고동철의 유일한 친구 범진이 전학을 간다. 그런데 범진이가 학교 일진 연성이에게 삥을 뜯기는 영상을 가지고 있다. 연성은 자신이 읽지도 않은 책들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 읽고 써 준 독후감으로 상을 받을 예정이다. 범진과 동철은 교육 도서관으로 가서 연성에게 한 방 먹이려고 한다. 성공할까? 성공한다고 해도 앞으로의 학교 생활은 또 어떻게 될까? 제목대로 멋진 하루가 펼쳐진다.


홍선주의 <비릿하고 찬란한>은 한국이 무대가 아니다. 프랑스 학교로 전학 온 정윤의 이야기다. 정윤이 전학 온 이유는 친구를 옥상에 밀어버린 기억 때문이다. 작가는 화자를 정윤이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정윤의 마음으로 설정했다. 전학 온 프랑스 학교도 인싸와 앗싸로 나누어져 있다. 정윤도 앗싸다.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영국 전학생 마르셀이 있다. 그는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 사실은 아니다. 정윤은 이 사실을 알지만 귀찮아질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이 정윤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준다.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수많은 한국 학생들의 내면을 솔직하게 그렸다. 홍선주의 소설은 처음 읽는데 아직 장편은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김이환의 <오늘의 이불킥>은 가끔 아이와 채널 돌리다 보는 <마계학교 이루마군>이 떠오르는 소설이다. 특이하게 마계의 포털이 열린 후 마법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서연의 편지로 가득 채웠다. 인간이 마계 고등학교에 가서 경험하게 되는 부끄러운 일들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보여준다. 대마왕이 용사에게 죽은 마왕성이 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이나 다양한 판타지의 종족들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설정은 낯익지만 재밌다. 가벼운 전개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마계 고3의 현실과 고민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소소한 곳에서 작은 웃음을 터지게 하는데 캐릭터의 특징을 잘 부각시켰다. 시리즈로 내놓아도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