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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현상청 사건일지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18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4월
평점 :
안전가옥 오리지널 18권이다.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세어 보니 3분의 1정도 읽었다.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다. 기이현상청을 처음 만난 것은 안전가옥 앤솔로지 4권 <편의점>의 단편이었다. 우모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였다. 이때 쓴 글을 보니 우모린이 주인공인 장편에 대한 기대를 살짝 드러냈다. 그런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기이현상청의 기이한 사건을 다룬 연작 단편이 먼저 나왔다.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노을빛>을 제외하면 4편이 실려 있다. 모두 읽고 난 후 작가의 말도 작은 단편으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블이나 DC코믹스처럼 이 단편에 나온 주인공들을 각각의 장편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기이현상청 유니버스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 과한 욕심일까?
네 편 중 한 편은 이미 다른 앤솔로지에 쓴 글이니 생략한다. <주문하신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작은 기이현상을 다룬다. 아이스크림의 포장지가 이상해 인터넷에 올렸는데 기이현상청 직원이 찾아온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아이스크림,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 항아리 속 두 정령 등이 엮여 이야기를 만든다. 이 단편의 재미는 무더위와 소소한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하급 정령의 한계를 현대 생성적 적대 신경망 원리를 이용해 풀어낸 부분이다. 솔직히 말해 현대 생성적 적대 신경망 원리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무수한 실패 끝에 현대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낸 부분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맛에 대한 표현을 읽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후 단편들도 이 촉 좋은 신입이 활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단편에 살짝 그 흔적만 나온다.
<마그눔 오푸스>는 서울이 무대가 아니다. 전라도 명주시라는 가상의 공간이 무대다. 기이현상청 하청업체의 직원들이 주인공이다. 송영은 가장 말단 직원이라고 하지만 이 업체의 임직원은 모두 세 명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그 혼자다. 처음 서시니라는 소녀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살아 있는 줄 알았다. 이 존재는 주민등록증을 매년 새롭게 발급받으면서 그 나이로 고정되었다. 서시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주는 대결 장면은 또 다른 재미다. 개발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조사하는데 여기서 나온 설정 중 일부가 마지막 중편의 설정과 맞닿아 있다. 지역 신흥종교의 교주와 신도의 바람이 예상하지 못한 일을 불러온 것이다. 이 단편을 보고 기이현상청과 그 하층업체의 임직원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기발함과 확장성이 눈에 확 들어온다.
<왕과 그들의 나라>는 가장 길다. 중편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경복궁이 안개에 휩싸이고, 왕의 복장을 한 부상자가 청와대 앞에 나타나면서 기이현상청이 개입한다. 이번 이야기에서 활약하는 두 존재는 호랑이의 기운을 가진 나루와 나무나 꽃과 관련 있는 기이한 존재 세경이다. 나루는 힘이 좋아 휠체어를 세경을 태우고 돌아다닌다. 이 둘이 상당히 많은 사건을 해결한 것 같다. 소설 속에 나온 사건들만 모아 놓아도 한 편의 연작소설이 나올 것 같다. 이들이 경복궁의 기이 현상을 보고 의문을 품었을 때 단서를 제공하는 인물이 바로 우모린이다. 나루 등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잠시 등장한 후 존재가 희미해진다. 아쉬운 대목이다.
경복궁의 기이 현상은 한 기이현상청 협력단체 황실제례진흥재단이 저지른 일에서 비롯했다. 설정 중 재밌는 부분은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과 세종로와 지하의 세종대왕 전시실 등이 신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 중 한 분 아닌가. 이 힘이 영혼에 실체를 부여하고, 시대의 한계 속에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 세종대왕의 영혼이 만들어낸 공간과 그 속에서 나루와 다른 기이현상청 직원 등이 협력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은 아주 멋지다. 아마 영상화한다면 멋진 판타지 액션이 나올 것 같다. 영화가 아니라면 애니메이션이라고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체를 밝히는 소설도 나오길 바란다. 재밌게 읽었는데 이런저런 바람이 더 많이 생긴다. 빨리 다음 기이현상청 사건들을 살짝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