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느와르 인 도쿄
이종학 지음 / 파람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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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회파 미스터리란 소개에 혹했다. 개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재즈 칼럼니스트, 오디오 평론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문외한이다 보니 낯선 이름이다. 작가가 적은 시나리오 이력을 보니 낯익은 영화 제목들이 보인다. 초창기 추리소설 제목을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한때 열심히 모았던 추리소설 책더미 속에서 그의 소설 한 권 정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 검색해도 대부분 재즈에 대한 책들이 나온다. 너무 오래 전 출간된 추리소설은 겨우 한 권 보일 뿐이다.


가부키초에서 열린 이계의 문이란 띠지 글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이계 판타지 모험물이었다. 하지만 장르는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하니 맞지 않다.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하니 평범한 대학 교수 박정민이 나온다. 역사를 전공하는 교수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뒷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설정이다. 정민은 아내와 결혼 10주년 여행으로 일본에 왔다. 그의 장인은 판사 출신 정치인이고, 결혼 후 그의 좋은 배경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삶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아내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런데 하나 불만인 것이 있다. 섹스에 목석 같은 아내다. 이런 아내가 온천 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내와의 일본 여행에 가이드로 붙은 친구가 재즈 트럼펫 연주자이자 한국인이다. 디지 길레스피를 좋아해 별명을 디지로 지었다. 작가는 디지를 등장시켜 정민이 재즈를 접하게 하고, 일본과 미국의 재즈가 어떻게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녹이기 위한 인물이자 정민의 욕망을 현실화하는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그는 정민이 가부키초에서 받은 전단지 속 여인 쇼코를 찾는데 도움을 주고, 결국 연결시켜준다. 물론 이 이전에 작은 일탈을 하고, 흔한 초보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여대생 에리카를 만난다. 처음 그가 에리카에게 속는 장면은 영화 등에서 흔히 보는 어리숙한 일반인의 모스 그대로다.


목석 같은 아내가 불만인 정민의 취미는 일본 AV를 모으는 것이다. 시대별 장르별로 10테라 정도 정리해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단하다. 이 경험이 소설 속 묘사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재즈와 더불어 작가의 작은 취미 생활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민의 전공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에 대한 것이다. 박정희와 만주국을 연결한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후 역사와 정치를 관련해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솔직히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다. 눈여겨 볼 부분도 많지만 시선의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그가 파헤친 역사의 한 자락이 큰 주제가 될 것 같았는데 정민의 성적 일탈과 모험으로 이야기가 빠져든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평범했던 교수가 어느 계기를 시점으로 여자들이 들어붙는다. 정 마담부터 에리카까지. 아내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다 보니 뒤틀린 욕망이 한 순간에 폭발한다. 쇼코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상당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데 작가는 개인적인 사연으로 끝낸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고급 콜걸인 그녀가 그를 지배하면서 이야기는 개인적 욕망으로 흘러간다. 살인이나 액션 등을 기대했는데 어둡고 강렬한 욕망 속으로 빠져든다. 솔직히 기대한 전개가 아니다. 작가의 한국 아내에 대한 속내가 드러나는 문장도 하나 나온다. 읽은 독자라면 아마 알 것이다. 정민의 일탈이 지속되면서 상황은 더욱 뒤틀린다. 대학 교수의 일상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는 순간이다.


살인 사건도, 강렬한 액션도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의혹 중 하나는 정민의 아내 미숙의 과거사다. 가끔 그녀가 보여준 행동과 생각은 무언가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사실 이 소설에서 반전처럼 펼쳐지는 것도 이것과 관계 있다.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실제 드러난 진실은 훨씬 자세하다. 쇼코의 사연 중 하나를 과거 그 유명한 연예인 매니저 살인 사건과 연결시켰다. 이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기대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 소설의 아쉬움과 재즈 초보자인 정민을 통해 풀어낸 재즈 전문가의 감상이 뒤섞인다. 명반이라고 소문난 앨범을 몇 번이고 듣지만 전혀 몰입하지 못한 나의 과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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