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전민식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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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재밌게 읽었다. 그 기억이 이 작가의 소설에 계속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200쪽이 되지 않는 소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들었는데 생각보다 묵직했다. 설마리 오피스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에 숨겨진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며 우리 삶의 단면을 살핀다. 화려한 직업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인 슈퍼마켓 주인, 공장 노동자, 학원 강사, 택배 노동자 등을 내세운다. 나의 삶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보고 지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요약본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은 오피스텔에 있는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슈퍼마켓 주인인 창범은 오랫동안 이 오피스텔에서 영업을 했고, 입주민들을 관찰한다. 그의 시선과 관심은 높은 곳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입주자들에게 외상을 주었다가 그 돈을 떼이기도 한다. 이런 그를 아내 말자가 타박을 주지만 그녀도 아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창범의 시선이 인간의 시점이라면 오피스텔 건물의 시점은 또 다른 곳에서 이 오피스텔과 사람들을 들여다본다. 어떤 대목에서는 의도적인 배제를 통해 이 소설의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숨긴다. 건물주 이안에게 말하는 방식인데 인간의 삶을 제3의 시선으로 말한다.


한때 이 오피스텔은 인기가 상당히 좋았다. 전철역에서 가깝고 깨끗했지만 지금은 낡고 쇄락했다. 건물이 낡고 조금씩 부서진 부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싼 월세와 역세권이란 이유로 집은 계속해서 채워진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이리저리 관계가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책 읽어주는 여자 혜정은 또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 부모가 모두 떠났고, 미성년자가 아니지만 고등학교에 다닌다.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남자들을 유혹한다. 신체적 접촉은 없고 책을 읽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남자들의 욕망이 있다. 조금씩 살짝 그 욕망이 드러난다. 이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볼 사람은 없다. 오해와 편견이 끼어들고, 작은 문제가 생긴다. 재밌는 것은 그녀가 책 읽어준 남자들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없다. 특정인을 내세우기보다 각 인물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기록한다. 화려한 이야기도, 미스터리한 사건도 없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은 있다. 제 각각의 사연을 풀어내면서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결합하는 남녀들의 모습이나 착각을 깨닫고 떠나는 그들을 보면서 조금씩 고개를 끄덕인다.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배신이 섞여 들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동상이몽이 그대로 드러난다. 욕망에 충실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그들을 보면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현실은 그들이 예상하고 기대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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