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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 ㅣ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1
응웬 꾸앙 티에우 외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12월
평점 :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낸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1권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처음 읽는 시집인데 번역 시집이다. 베트남 시인 20명의 시 3편씩 균등하게 담고 있다. 이상하게 번역시는 나에게 더 어렵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을 꾸역꾸역 읽는 적도 있지만 그 시들이 가슴에 와 닿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괜한 나의 트집이 이유인 경우도 있고,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시집의 일부는 내 생각에 의하면 어색하게 다가왔다. 이 부분은 내가 베트남어 알고 모르고 문제가 아니라 나의 갇힌 사고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의 마무리가 눈에 거슬렸다. 번역자가 이런 선택을 할 때 고민했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44년생부터 88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인들이 등장한다. 시집을 읽을 때 의문을 품은 것 하나가 있다. 바로 70년대생 시인들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시인들이 완벽히 소멸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베트남 당대 대표 시선집 2권에는 이 당시 출생자들의 시가 많이 나올까 기대해본다. 베트남 전쟁 마지막에 태어나 뒤바뀐 조국의 상황에서 삶을 산 그들이다. 이 경험이 그들의 시에 어떻게 표현되고 다루어졌을지 궁금하다.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세대별로 감성이 확 갈라지는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의 둔한 감각을 탓할 뿐이다.
60편의 시 중에서 나의 감성과 맞는 시보다 낯선 느낌의 시들이 더 많다. 가볍게 읽고 지나가면서 놓친 감성은 오롯이 나의 잘못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몇 편을 읽으니 그때 놓친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시는 옮긴이의 말에 나온 시들이다. 흐우 틴의 “그대와 멀어지니 / 달도 외롭고 / 해도 외롭다 / 바다는 그래도 자신의 깊이와 넓이에 기대보는데 / 돛단배 잠시 사라지면 이내 외롭다”(<바다에서 쓴 시>의 부분) 같은 시다. 이런 감성을 다른 시를 읽으면서도 분명히 느꼈을 텐데 한 시인의 시만 다루지 않다 보니 놓친 부분이 많다. 다행이라면 이 글을 쓰면서 읽은 시들이 조금씩 가슴 속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쩐 안 타이의 <오후마다>를 읽으면서 조용하고, 한가롭고, 침묵에 젖고,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어둠이 호수의 표면을 덮는 시들을 보면서 한적한 고독을 느낀다. 쩐 뚜언의 <손가락 마술>을 첫 단락을 읽고 결합을 떠올렸다면 표제작인 <사는 게 뭔지 오래돼서 잊었다>의 마지막 행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사람이 피곤에 절었다”란 시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는 앞에서 “늙은 나무뿌리 베개를 베고 조용히 죽고 싶다”고 말했다. 가끔 삺의 피곤과 힘듦이 몰려올 때 조용히 내뱉는 말들이다. 피곤 속에 느낀 잠깐의 안락이 그 속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시집 속에 담긴 시들에서 생각보다 베트남 전쟁의 풍경을 다룬 시를 잘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오독이 있거나 편집 과정에서 의도적인 배제처럼 보인다. 쩐 꾸앙 다오의 <벙어리 폭탄>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폭탄에 익숙했다”는 마을 사람과 기폭 장치를 제거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다. 홍 탄 꾸앙은 <전쟁의 마지막 밤>에서 “조국사랑에 대해 큰소리로 말하지 마라 / 오늘 밤만큼은 / 나는 그저 바란다 / 조용히 / 그리워하고 싶다 / 너를…..” 을 외치며 낭만적인 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쩐 꾸앙 꾸이의 <아침 역>에서 “새벽마다 기차역 플랫폼 / 현실을 향해 경적을 울린다”고 했을 때 잠시 추억의 기차역 장면이 떠올랐다.
이 시집에 실린 수많은 시들은 그들의 감성을 울린 것들이다. 어떤 대목에서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그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일 것이다. 소수 민족 출신 시인의 시는 더욱 그랬다. 그들의 문화를 계속 이어가려는 모습과 자본주의화 되면서 하나로 묶여가는 문화를 떠올리면 그들을 더 응원하고 싶다. 읽다가 “슬픈 두리안 향기”(부 홍 <억울함을 풀어주는 새의 말>)라는 시어를 읽고 그 냄새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 한참 고민했던 것이 떠오른다. 작년에도 시집을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는데 이 시집을 시작으로 올해는 목표 달성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