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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평점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 참여한 앤솔로지다. 책 제목에서 알려주듯이 대한민국식 펄프픽션을 정립해보고자 기획된 앤솔로지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B급 감성을 좋아하기에 더 관심이 갔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예상을 벗어난 이야기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취향에 맞는 단편을 찾아라고 말하는 상차림 같다.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작가들(이경희 제외)은 이전에 단편 등으로 한 번 이상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장르 소설을 좋아하기에 아주 만족한다. 읽을 때는 무심코 본 표지를 다시 찬찬히 보니 단편들과 연결되어 있다.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다섯 작가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인지도가 가장 높은 작가가 조예은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작가의 소설은 나의 취향과 조금 떨어져 있다. 뛰어난 가독성을 지니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걸리는 부분이 있다. <햄버거를 먹지 마세요>도 뻔한 설정의 소설인데 김 사장의 난입이 눈에 거슬린다. 햄버거와 얽힌 학원괴담이 서늘하게 다가와야 하는데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아마 조예은이란 이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도 있을 것이다. 류연웅의 <떡볶이 세계화 본부>는 처음부터 B급으로 나간다. 떡볶이를 먹고 죽은 영국 영화 배우와 피를 떡볶이에 넣어 먹는 뱀파이어란 설정이 그렇다. 매운 맛을 다섯 배나 강하게 만든 떡볶이를 먹은 뱀파이어가 뱀fier로 진화한다는 설정도 황당하지만 재밌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담긴 노동 이야기는 웃프다.
홍지운의 <정직한 살인자>는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패러디했다. 조선족 여자가 남편의 시체를 조직이 시체를 유기하는 저수지로 간다. 시체를 저수지에 넣었는데 외계인이 나타난다. 시체 유기의 사연을 듣는데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밝혀낸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개인적으로 단편으로 <시민 R>가 더불어 완성도가 가장 높은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경희의 <서울 도시철도 수호자들>은 특별한 지하철 민원자를 맡아 따라다니면서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다룬다. 진상 선배의 정체와 서울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 등이 황당하지만 재밌다. 마지막 대결 장면과 이 장면을 다룬 현실의 뉴스는 또 다른 재미다. 유일하게 처음 읽는 작가인데 이 지하철 시리즈를 계속 내어줬으면 한다. 개성 강한 인물들의 등장과 설정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최영희의 <시민 R>은 청소로봇 알옛의 살인 이야기다. 청소로봇 알옛이 어떻게 자신을 만든 주인 강희원을 폐기처분하게 되었는지 천천히 밝힌다. 인공지능, 딥러닝과 더불어 인격을 가지게 된 로봇이 살인에 이르기까지 알려주는데 살짝 현학적인 부분이 있지만 천천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앞에 나온 소설들이 단순히 재미를 위해 B급 감성으로 똘똘 뭉쳤다면 이 소설은 시민의 조건 등과 같은 철학적인 문제도 담고 있다. 이 앤솔로지에서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스타워즈의 알투디투와 똑 닮았다는 부분에서 괜히 피규어 욕심을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