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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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범죄문학상 5관왕이다. 화려한 수상 이력인데 다루고 있는 소재처럼 대단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늦은 밤 마지막 몇 십 쪽을 다음 날로 넘기려고 하다가 그냥 읽고 말았다.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나면 다음 날 일정이 깨어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실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보러가드가 달려나가는 속도와 화려한 운전 실력은 작가의 설명과 묘사를 통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다. 거침없고,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다. 범죄인들을 다루고 있기에 크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약간의 반발감도 있다. 전적으로 주인공 손을 들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뭐 같은 현실은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보러가드는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은 사설 레이싱과 범죄자를 태우고 달아나는 것이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그는 멋진 레이싱을 보여준다. 그의 성격을 알려주는 잔인한 행동도 같이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사설 경주에 온 이유는 자동차 수리센터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백인이 운영하는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그의 고객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돈이 들어갈 곳은 많고, 나올 곳은 점점 메말라 가는 와중에 이전에 그를 속인 적 있는 로니가 그를 찾아온다. 보석상을 털자는 계획을 가지고 말이다. 로니의 애인 제니가 내부자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보통 때라면 당연히 그를 내쫓았겠지만 지금은 돈이 급하다. 이 절도 행위에 참여한다.


정말 뛰어난 드라이버인 그는 보석상을 보고 도주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때 작은 에피소드도 생긴다. 어떤 식으로 도주할 지 궁금했는데 사건 당일 그가 보여준 곡예 운전은 영상으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멋지다. 아마 영상이라면 더 화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잘 챙긴다고 생각한 보러가드를 공범인 로니는 또 속인다. 실제 보석상 금고에는 많은 현찰과 그가 말한 것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속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보석상이 몰래 숨겨둔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문제다. 갱들이 자신들의 돈세탁을 위해 놓아둔 것인데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훔친 것이다. 이야기는 이제 더 잔혹하고 빠르게 펼쳐진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운전 실력이 아버지의 유산이란 사실과 그가 몰고 다니는 차 더스터도 아버지가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흑인이 갈 곳을 많지 않다. 그가 소년 시절 낳은 딸은 또 어떤가. 그가 소년원에 다녀오게 된 사연을 말할 때 현재 그가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보러가드는 이것을 몽타주 가문의 유전적 특성이라고 말하지만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유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철저하게 속도감과 재미를 추구한다. 이 사이를 채우는 것은 보러가드가 느끼는 두 개의 삶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사는 삶과 폭주하는 차를 몰면서 스릴을 즐기는 버그의 삶이다. 그가 살아 있다고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아쉽게도 버그의 삶이다. 물론 바라는 삶은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이런 삶을 흔드는 것이 돈이다. 환경이다. 그의 아내 키아도 버그의 삶을 알고 있다. 불안해하면서도 현실 때문에 멈추게 하지를 못한다. 어쩌면 버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두 삶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고, 처절한 복수의 총구는 이렇게 불을 품는다. 독자는 이 살육에 몰입해 열광한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은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벌써 너무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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