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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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첫 번째 소설 선집이다. 1911년부터 1925년 사이에 발표된 소설 6편을 담고 있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혹시 읽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한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몇 권의 책을 사 놓았지만 책 더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그 책들을 찾아내고 싶다. 나의 게으름과 밀린 다른 책들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지만 말이다. 가끔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을 때 취향에 맞지 않아 고역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도입부에 잠시 집중이 깨어져도 바로 흥미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왜 많은 사람들이 거의 소설을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풍경 등에서 시대를 알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리 표현이나 사건을 풀어내는 대목은 아주 탁월하고 현대적이다.


6편의 단편 중에서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아주 짧고 개인적으로 시간 나면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의 방주에서 시작한 것이 현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생략과 비약 때문이다. <아찔한 비밀>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바뀌는 주인공 때문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바람둥이가 주인공처럼 등장해 한 유대인 부인을 유혹하는 초반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바랑둥이가 아이를 통해 엄마에게 접근한 후 너무 빨리 아이를 멀리 하면서 생긴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풀어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두 남녀의 욕망과 그 사이에 낀 아이가 비밀에 점점 다가가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다른 모습은 너무 빠른 것 같지만 성장은 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불안>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겁박하는 여자를 등장시켜 그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다.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주면서 달아나고, 점점 더 자주 돈을 요구하는 협박 여자에 휘둘리는 그녀의 심리를 긴장감 넘치게 그린다. 정해진 파국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성과 감점 사이에서 선택은 언제나 감정에 우선 순위를 내어준다. 그리고 예상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읽다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한 여성의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반한 작가에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하나씩 풀어간다. 어떻게 보면 ‘미저리’의 스토커 팬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작가의 바람기와 무감각한 감정 등이 그녀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몇 번의 밤을 같이 보냈지만 같은 인물이란 사실을 몰랐다는 표현을 보면서 아들의 죽음과 이 편지가 지닌 비극을 절실하게 느낀다.


표제작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독일의 초고도 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나도 급속하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행위와 오랜 세월 자신의 취미로 좋은 판화들을 모은 수집가 이야기를 엮었다. 비극은 전쟁에서 비롯했지만 현실에 닥친 삶의 무게는 실명한 수집가를 속이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열렬하게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 엇갈린 감정들이 주는 먹먹함을 떨칠 수 없다.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휴양지에서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잘 생긴 남자와 떠난 여성에서 시작해 과거의 기억 속으로 넘어간다. 한 노부인이 자신의 과거 비밀을 솔직하게 풀어내는데 그 이유는 화자가 도망친 여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과거의 비밀을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도박장에서 모든 것을 잃고 삶도 포기하려는 남자와 함께 한 24시간을 들려주는데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욕망은 진솔하고 너무나도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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