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가 쓴 첫 소설이다. <지대넓얕>이 워낙 인기를 얻어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팟캐스트로 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책으로 읽자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그러다 채사장의 첫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봤다. 워낙 글을 쉽고 재밌게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 펼쳐 읽으면서 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 힘들었다. 작가가 만든 세계와 그가 풀어낸 철학들이 나의 머릿속에 춤을 추지만 함께 섞여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곱씹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마. 주인공의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인도 신화 속 신과 제례에 올리는 특별한 음료와 마약이란 간단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나에겐 <소마신화전기>란 만화가 더 익숙하다. 이런 것들을 뒤로 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한 소년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신을 믿는 소년 소마가 아버지가 쏜 화살을 찾으러 떠난 후 마주한 장대한 삶을 그려낸다. 그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비약과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오래 전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 <파우스트>의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판타지 소설 속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다.


소마가 살던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가 화살을 좇아다녀온 후 본 마을의 모습은 학살의 현장이다. 죽은 어머니 시체 옆에 머물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그를 말에 태우고 떠난다. 그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한다. 그를 데리고 간 인물은 한 국가의 귀족이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여기서 시점이 바뀐다. 아이의 시점이 아닌 아이를 관심있게 관찰하는 한나의 시선이다. 소마는 자신의 기억을 잊고, 하나의 아들처럼 자란다. 하지만 권력은 욕망을 뒤로 숨긴 채 슬며시 집안으로 들어온다. 오만한 귀족 아이가 양자가 된다. 둘이 좋은 형제가 되어 서로 돕는 이야기도 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아들은 오만하고 이기적이다.


이 두 아들의 갈등을 심화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 짧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백인들의 세계에서 비백인은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들다. 왕실기사단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지만 이 인연도 결코 좋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악의는 정체를 숨긴 채 살며시 찾아와 오해의 씨를 뿌린다. 이 이야기에서 작가는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펼친다. 그리고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알게 되고, 자신이 소마라고 외친다. 영웅의 서사시가 펼쳐질 것 같지만 긴 세월이 흐른 후 마주한 소마는 무자비하고 잔혹한 용병 부대장이다. 적들에게는 아틸라의 현세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이후 펼쳐지는 소마의 행적은 영웅이라 불려고 별 무리가 없다. 지혜롭고 용감하고 무자비한 군 사령관으로 적들을 무찌른다. 승리는 당연하다. 예전의 오해를 풀고 화해할 것 같았는데 또 다른 길을 간다.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예측하기 힘든 이야기에서 우린 역사의 사실과 삶의 철학과 인간들의 헛되고 뒤틀린 욕망이 빚어낸 다양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카이사르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는 시간 속에 조금씩 사그라든다. 간결하게 다루어진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발견한다. 전장을 달리던 말들이 마구간에 머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의 생활 습관이 어떻게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지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아렸다.


단순히 소마란 인물의 영웅담이나 재미만을 추구한다면 이 소설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야기의 비약 속에 가려진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이어야 하고, 개혁의 실패와 종교 등에 대한 설명은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의 몽고가 세상을 정복한 후 왜 그렇게 빨리 멸망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대목 중 하나가 한 곳에 머물면서 나태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전장을 달리며 전우애를 쌓은 이들이 권력을 쥐자 몸에 살이 붙고, 기존 귀족처럼 변한다. 권력과 욕망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소마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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