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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고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11월
평점 :
가끔 작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 작품 목록을 보고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모리사와 아키오다. 몇 편은 분명하게 기억하는데 목록을 보다 보면 이 책도 그의 소설이었어! 하고 놀란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소설을 읽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 더 많은 것 같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의 영향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은 가독성이 아주 좋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설도 그렇다. 재미까지 가지고 있으니 몇 권 사놓고 책에 대한 권태기가 오면 꺼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과 표지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띠지에 나오는 BTS란 이름이다. <매직 숍>이란 노래의 가사에 위로를 받았다는 문구는 아주 강하게 다가온다. 실제 소설 속에서 이 매직 숍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한 번 말하고 지나가는 설정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구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역시 작가 이름이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7년 차 직장인 다스쿠의 좌천과 새로운 결심이 먼저 만나지만 진짜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금발의 미녀인 루이루이 씨다. 뱃멀미로 고생하는 그를 도와주는 미녀, 그가 준 게임에 빠진 절세미녀. 둘은 같은 섬에 가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오니가시마란 섬은 본토에서 아주 먼 오지이자 섬이다. 인구는 200명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섬이지만 섬 사람들은 동과 서로 나눠 대립한다. 다스쿠가 이 섬에 온 이유는 이 섬의 활성화를 위해서다. 이벤트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는 다른 업무가 있지만 누구도 가길 원하지 않는 곳에 좌천되어 왔다. 우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생각을 살짝 바꿔 유급 휴가처럼 이 섬에서 쉬고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이 그를 편하게 쉬게 놓아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광과 기묘한 관습을 가진 이 섬과 사람들이 그를 뒤흔든다. 여기에 섬의 무녀가 예언하는 야릇한 말도 나중에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좋은 풍광을 가진 섬들은 많지만 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왔는데 이 섬 활성화 계획에 참여한 업체는 다스쿠의 회사가 유일했다. 먼 섬 활성화 계획에 처음부터 사장은 관심이 없었다. 예산만 따먹으면 그만이다. 다스쿠는 휴가가 목적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가 맺어지고, 마음이 움직이면서 상황은 바뀐다. 처음에 섬 활성화를 위해 온 그를 구세주라고 불렀다. 마트도 하나, 주유소도 하나 밖에 없고, 인구도 2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니 이 단어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사장이 회사의 에이스라고 큰 소리까지 친 상태이니 더욱 그렇다. 서로 다른 생각이 빚어낸 오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섬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동과 서로 나누어진 관계다. 술집도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스쿠는 촌장이 속한 서쪽에 강제 편입된다. 이 섬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목을 조르는 교수라는 관습이 있다. 겨자 가득한 초밥을 먹고 그들의 편이 된다. 그의 바람은 상관없다. 다스쿠를 데리고 섬을 돌면서 설명하는 역할을 촌장의 아들 쇼가 한다. 그런데 촌장과 쇼의 성이 다르다. 호기심이 일지만 묻기 어렵다. 섬 사람들의 갈등과 모두가 믿는 무녀를 만나고, 아름 풍경을 열심히 구경한다. 다스쿠가 만들 섬 활성화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섬 일주 관광이 끝난 다음은 혼자서 다녀야 한다.
절세미녀 루이루이 씨는 다스쿠가 머무는 방의 건너편에 산다. 루이루이 씨는 동쪽 사람들이 다니는 술집에서 알바를 하는데 섬 남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BTS의 <매직 숍> 가사를 알려준 인물도 루이루이 씨다. 미모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풍기는 그녀가 진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후반부에 동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울 때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누가 루이루이의 역할을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털털하고 뛰어난 미모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그녀는 평범하지만 진솔한 다스쿠와 대비되면서 좋은 콤비를 이룬다. 후반부에 예상한대로 진행되지 않는 계획을 보면서 재밌게 웃었다.
화려함은 없지만 소소한 재미로 가득하다. 멋진 반전은 없지만 작은 반전은 곳곳에 있다. 앞에 풀어놓은 작은 설정이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고오니가시마의 멋진 풍경을 내가 본 이미지로 대체하고, 이 마을 사람들의 대립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악당이 등장해 갈등을 고조시키기 보다 일반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마음과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면서 재미를 멋지게 뽑아낸다. 편안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