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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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청춘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1988년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계속해서 나오는 인물들과 개가 있다. 인물은 유카와 고시로이고, 개는 미술부 부원인 하야세 고시로의 이름을 딴 고시로다. 사람과 개의 이름이 똑같다. 우연히 부른 이름이 개의 이름으로 정착했고, 개는 주인에게 버림받아 홀로 남았다. 어린 개는 미술부원들의 사랑을 받는다. 집에 데리고 갈 사람들이 없다. 유기견 보관소에 가거나 학교에 남아야 한다. 밖으로 내보내려는 교장과 학생들의 대화는 날카롭기보다 현실적이다. 결국 학생들이 돌보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미술부실에서 기른다. 그리고 고시로의 시선이 짧게 나오면서 다섯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첫 이야기에 나오는 유카와 고시로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엇갈린 시간 속에서, 다른 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교차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둘의 미래를 계속 그려보게 된다. 작은 도시와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한 학생의 이야기 속에 과거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술부가 고시로를 돌보면서 기록한 일지는 이 연관성을 더 높여준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이 이름들이 나오면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단편적이나마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이것이 극대화된 부분이 최종화다. 2019년 여름에 벌어진 모임은 아주 멋진 후일담을 담고 있다.


긴 세월을 다룬다. 이 시간들은 많은 변화를 담고 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나오고, 일본의 대지진이 두 번이나 발생하고,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도 있었다. 실제 소설 속에서 직접 다루어지는 사건은 고베 대지진이다. 피해자 중 한 명을 이야기 속에 담고 그 참상의 일부만 보여주는데도 울컥한다. 옴진리교 사건과 고베 대지진은 모두 1995년에 발생한 대사건이다. 이런 대사건이 일어나도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진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효율을 따지는 한 소녀가 진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춘 소설의 백미는 F1를 둘러싼 두 소년의 관람기다. 소위 말하는 전교1등과 평범한 한 학생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같고, 우연히 얻게 된 표로 아주 멋진 추억을 쌓는 과정이 뜨거운 열정을 전해준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학창 시절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다른 나이지만. 원조교제를 하는 학교 최고 미녀와 그녀를 좋아하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소년이 비밀을 공유하고, 소녀가 지닌 아픈 현실을 풀어내는 장면을 보면서 현실의 비참함과 아픔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누나가 학교 선생으로 나타났을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고시로의 감각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오래 전 본 일드와 주제가가 나오고, 그때의 나를 잠시 돌아본다.


고3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들려주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고시로와 엮이면서 과거의 흔적을 미래로 이어간다. 그 흔적들 중 일부는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 약칭 고돌모의 기록에 나타난다. 어떤 대목에서는 부풀려진 부분도 있다. 시대의 흐름 속에 기록과 기억은 점점 쌓여 간다. 작가는 이 기억을 기록으로 기초를 닦고, 추억 속 상황을 불러와 멋지게 펼쳐놓는다. 다양한 학생들의 다양한 삶과 선택과 현실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어린 시절 한 무모한 행동이나 사랑했던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 순간의 아픔과 그리움들이 복잡하게 감정을 휘저어 놓는다. 그때는 죽을 것 같이 아프고, 보고 싶어 했던 감정들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지나왔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 또 다른 감정들이 오겠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재밌게 읽었는데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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