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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ㅣ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평점 :
안전가옥 쇼-트 9권이다. 이 책 이전에 류연웅의 소설은 모두 앤솔로지에서만 봤다. 안전가옥 오리지널도 한편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일단 찜해 놓았다. 찜을 한 이유는 이번 소설을 아주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대패한 이후 축구가 사회 5대악으로 지정된 후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작가는 직선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이야기에 주석을 달고, 복선을 알려주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 전개가 전혀 무겁지 않고 코믹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패러디와 변주도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다.
대학의 조별 과제. 나에겐 낯설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이 조별 과제 이야기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채연이 조별 과제 A학점을 내걸고 조원들에게 50만 원 비용을 청구할 때만 해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A를 받지 못하면 200배 배상하겠다는 조건이 붙는다. 모두가 송금하고, 과제 헌터 채연은 득의양양하다.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하윤주 다큐멘터리를 내면 당연히 A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가 상황을 비튼다. 각조에서 내놓은 기획안을 섞어 뽑게 한 것이다. 이때 뽑은 인물이 김덕배다. 채연은 당연히 누구지? 하는 의문을 갖는다.
PD의 후기를 보면 김덕배란 이름을 맨시티의 케빈 더 브라위너에서 따왔음을 알려준다. 실제는 상관관계가 없다. 가까운 미래의 한국은 축구가 사회 5대악으로 지정되어 월드컵도 축구 경기도 없다. 공원이나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도 금지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채연이 김덕배를 찾기 위해 인터뷰한 두 인물을 통해서 나온다. 한 명은 그 당시 축구팀 감독이고, 다른 한 명은 축구협회 회장이다. 김덕배란 선수를 선발하게 된 경위와 그가 불러온 가공할 참사 등을 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둘도 김덕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인터뷰를 하지 못하니 영상을 조작한다. 그런데 이 다큐를 교수가 자기 유튜브에 올리면서 상황이 바뀐다.
축구가 5대악으로 지정된 데는 한국 축구팀의 패배도 있지만 사람들이 경기에 엄청난 베팅을 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생기고, 축구는 근절되었다. 읽으면서 야구나 다른 스포츠 종목도 토토가 있는데 하고 토를 달아봐야 소용없다. 그냥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작가가 풀어낸 미래는 작은 기본소득도 지급한다. 그렇다고 학비 대출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가면 화폐 가치가 뒤섞이고 과장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의 실수인지, 의도적인 연출인지 의문이 생긴다. 뭐 이 부분도 대충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채연의 다큐가 불러온 여파다. 그리고 채연의 과거와 김덕배의 아버지가 등장해 상황을 살짝 비틀고 꼰다.
채연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유쾌하다.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재미 있는 반전도 펼쳐진다. 김덕배를 뽑아라고 첫 댓글을 남긴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고, 누가 인천공항에서 삶은 달걀을 던졌는지도 알려진다. 개인들에게 쌓였던 감정이 하나의 발화점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한때 <동상이몽>에 출연해 미디어소녀로 불렸던 적이 있고, 작은 성공이 다시 엄마와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하는 등 삶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재밌게 보여준다. 읽다 드는 생각 중 하나 ‘그래서 김덕배는 언제 등장하는가?’ 하는 의문에 작가는 마지막에 살짝 등장시켜 멋지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롭게 사회 5대악으로 선정된 것을 알려주는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