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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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을 읽었다. 인터넷 서점 상 정보만으로는 목차 외에 따로 보이는 것이 없다. 2017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는 정보가 덧붙여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선정에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 왠지 모르게 다른 제목과 헷갈리면서 청소년 소설로 착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점점 쇠락하는 저질 기억력은 책 정보에 혼란을 가져온다. 노안과 체력 저하에 따른 집중력 저하는 요즘 나의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다. 이 소설이 예상 외로 묵직한 재미를 주었지만 단숨에 읽지 못한 작은 변명을 해본다.


바람을 만드는 존재 ‘웨나’를 평생 쫓은 네레오 코르소의 일생을 그렸다.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고원에서 마무리하지만 그 속에는 한 가우초의 장대한 모험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를 판 후 공포와 두려움에 몸부림 칠 때 한 늙은 가우초가 들려준 웨나의 이야기는 평생 그를 삼킨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본 웨나의 이미지는 평생 새겨져 지우지지 않는다. 그가 고원을 내려와 세상을 떠돌 때 그 이미지는 그와 함께 세상을 여행한다. 그가 말한 그 이미지와 의미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바꿔 그에게 설명한다. 최근 많이 읽고 있는 장르소설이나 판타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힘 있고 묵직한 소설이다.


일곱 살 여아를 죽인 퓨마를 죽이기 위해 예순여덟 살 가우초가 길을 떠난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다. 이 퓨마는 보통의 퓨마와 다르다. 영리하다. 늙은 몸은 이전처럼 퓨마 사냥을 쉽게 마무리하기 힘들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고원에서 도움을 요청하려면 불을 피워야 한다. 정신이 없다. 이런 그를 고원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가려는 한 사람이 발견한다. 그는 네레오가 바라는 바를 들어주지 않는다. 왜냐면 그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 그의 일생이 시간 순으로 하나씩 독자 앞에 펼쳐진다. 아들을 판 아버지, 가우초로 자라 자신이 웨나라고 생각했던 존재의 갑작스러운 몰락, 웨나를 찾기 위한 도시행 등. 섬세하고 묵직한 문장으로 작가는 이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고원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외로운 가우초가 쉽게 기대는 것은 술과 도박이다. 하지만 네레오는 술도 도박도 하지 않는다. 평생 그가 추구한 것은 바람을 만드는 사람 웨나다. 그가 간절하게 바란 것을 웨나를 찾는 것이다. 그의 이 바람을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대부분 부정한다.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환상이라거나 착각이라고 하면서. 그의 여행은 계속 이어지고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네레오는 이 혼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단순한 가우초의 삶에 비해 도시의 삶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장면 중 하나는 아나와 함께 한 밤의 여행이다. 아나의 순진한 열망과 사기극은 읽는 내내 가슴 아프게 한다.


전설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입으로 입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어떤 전설은 그 도중에 사라지거나 왜곡된다. 한 가우초가 간절하게 바란 웨나는 어떨까? 우연히 발견한 목상의 흔적을 좇아 간 곳에서 들은 또 다른 웨나 전설은 그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가 안락할 수도 있는 삶을 포기하고 웨나를 찾아 떠난 것도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다시 어린 시절 그 고원으로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이것은 우리가 두려움에, 좀더 편안함에 젖어 남들처럼 그 길을 걷는 것과 다른 선택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는 행복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데 두 가지 자료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인터넷 정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그곳들을 한 번씩 다녀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작가의 뛰어난 필력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나에게 강한 인상과 여운은 남기는데 일조한 것은 신형철 평론가의 한 마디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은 그것을 간절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조금은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선을 수행하는 스님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 삶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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