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타의 세 사람
메가 마줌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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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 좋은 작품들을 선별해 번역한 덕분일 것이다. 작가는 인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고,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차세대 줌파 라히리’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줌파 라히리의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고 묵혀 두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작가의 시선에 미국의 시선이 혹시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 번 하기 위해서다. 내가 잘 모르는 인도를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생길 수 있는 선입견을 주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결국 내가 본 것은 나의 시선으로 해석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크게 세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지반, 러블리, 체육교사 등이다. 지반은 가난한 환경 탓에 중등학교 중퇴한 후 쇼핑몰 직원으로 일한다. 어느 날 밤 그녀 집 근처 기차역에서 테러가 발행해 100명 이상이 죽는다. 그녀는 이 내용을 공유하고, 허세에 차서 정부를 규탄하는 글 하나를 올린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이 찾아와 그녀를 테리범의 동료로 간주한다. 그녀가 페이스북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이 테러범 모집자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되자 각종 증언이 쏟아진다. 진실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토해낸 것들이다. 그녀가 범인이라는 물리적 증거가 하나도 없다. 격해진 여론과 그것을 두려워한 경찰이 그녀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여기에 더욱 황당한 것은 그녀의 고백을 왜곡한 언론이다. 이 언론 보도를 보고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현실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블리. 여자가 되고 싶은 여장남자다. 히즈라라고 불리는데 구걸을 하면서 생활한다. 러블리가 바라는 것은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다. 수업료를 내고 연기수업을 받는다. 지반은 러블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 그녀가 가지고 간 보따리의 정체는 교과서였다. 유명 배우가 되기 위해 러블리는 열심히 노력한다. 돈을 들여 프로필 CD를 만들고, 에이전시에 등록도 한다. 완전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전 동료 한 명이 마취도 되지 않은 불법 수술을 받은 후 죽었다. 그녀는 이 수술을 받을 마음이 없다. 이 소설에서 러블리는 이전에 몰랐던 인도의 풍습 하나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녀는 지반을 위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한다.


체육교사. 우연히 한 유명 정치인의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가 마이크를 고쳐주는 작은 도움을 준 후 정치에 발을 내딛는 인물이다. 그는 지반이 학생일 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도 없이 떠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 불만을 더 부각해 경찰에 증언한다. 이것보다 더 흥미롭게 진행되는 것은 평범했던 체육교사가 한 정치인으로 자라는 과정이다. 권력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충성해야 하는 대상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가 현실 문제를 말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 중 하나가 가짜 증언이다.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비 올 때 매번 넘치는 학교 앞 하수구를 바로 수리한 것이다.


서로 다른 위치의 세 남녀를 화자로 내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밀어 넣었다.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바퀴 중 하나가 살짝 드러난다. 사실보다는 가짜 뉴스가 더 힘을 발휘하고, 물증보다는 심증이 더 앞선다. 인도 사회에 내재한 오랜 문제 중 하나인 종교적 갈등도 드러난다. 이성보다는 군중심리로 대변되는 감정이 더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계급과 부는 감옥마저 차별한다. 순수한 감정은 성공에 대한 욕망에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 서로의 이해가 맞을 때 잠깐 눈을 감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비극의 수레가 너무 빨리 굴러간다. 놀라운 가독성과 낯선 삶의 모습은 나를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21세기 찰스 디킨스라는 표현을 보면서 디킨스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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