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JP 딜레이니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먼저 출간된 다른 책들의 표지를 보면 상당히 낯익다.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랑하는 아내를 기계 몸으로 되살린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SF 장르에서 가끔 본 설정이다.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이용해 아내를 되살린다는 설정은 아주 현대적이다. 미래적으로 푼다면 공각기동대의 ‘전뇌’ 같은 방식이 되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장르 소설이 아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SF소설이 아니라 심리 스릴러라고 분명히 말한다. 실제 소설을 읽으면 기술적인 문제나 SF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많이 생략되어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라진 애비게일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팀. 애비의 남편이다. 실리콘밸리의 대단한 기술자이자 사업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애비가 깨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현재가 아닌 과거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애비를 당신으로 부르면서 로봇의 몸으로 깨어난 그녀를 따라가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팀과 애비가 만난 후 그들을 옆에서 본 사람들의 시선이다. 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로봇인 애비의 시점이지만 팀에 대해 가장 잘 알려주는 부분은 팀 회사 내부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개발자인지, 얼마나 엄청난 폭군인지, 그가 휘두른 권력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지 말이다. 그리고 팀이 얼마나 애비에게 빠졌는지도 알려준다.


로봇의 몸으로 깨어난 애비가 마주한 몇 가지 사실들은 놀랍다. 가장 큰 것은 애비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남편 팀의 살인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했지만 패소한다. 이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는데 그 과정이 우습다. 애비의 외모를 가지고 밖으로 나간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로봇이란 것을 증명한 후 풀려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애비의 기억 등을 이용해 애비를 닮은 로봇을 만든 것이 법적 문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그녀가 실종된 해변가 저택에서 남편과 자폐 아들의 교사가 섹스를 나누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남편의 의도가 담겨 있는데 그의 설명과 대응 방식이 너무 당당하고 당연한 듯하다. 아내를 너무나도 그리워해서 로봇으로 되살렸다는 것과 너무 다른 행동이다.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과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결을 몇 번 말한다. 로봇 애비의 딥러닝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작가는 이 애비 봇에게 감정도 부여하는데 이것은 현재 과학으로 구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넘어가도 큰 문제가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이 기술들을 하나의 도구와 설정으로 이용하고 있지 과학적 사실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애비 봇이 안고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법적 문제들까지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애비 봇이 태어나 애비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고, 인터뷰하는 것을 본 애비의 부모와 형제들은 데이터 삭제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애비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더 집중한다.


애비 봇이 집안을 뒤지면서 발견한 아이패드와 이전 핸드폰은 이 실종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정체가 외부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과 닮은 모습이기에 작은 위장만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로봇이란 사실을 모른다. 이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기억들이 딥러닝을 통해 자발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통찰력을 가진 애비 봇에게 팀이 털어놓는 사실 하나는 애비의 실종에 또 다른 단서가 된다. 사람의 기억을 가진 로봇이 과연 그 사람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은 많은 SF 장르에서 다루었다. 작가는 이 부분은 직접 다루지 않지만 마지막에 살짝 하나 풀어놓는다. 두 시점이 하나로 모이는 그 순간에.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을 상당히 많이 깨트린다. 폭압적인 오너의 행위, 성차별, 비인간적 폭언 등이 난무한다. 이것을 덮는 비밀유지 합의는 미국 소설 등에서 자주 본 장면이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이용해 상황을 악화시킨다. 여기에 자폐가 있는 아들 대니를 등장시켜 다른 문제를 만든다. 이 부분은 실제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어떤 학교의 모습은 아주 잔혹하다. 애비 봇이 단서를 하나씩 얻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문자를 보내면서 머릿속에 새로운 의심의 씨앗이 자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맞이한다. 피그말리온 이야기의 현대판 후일담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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