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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하난의 우물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1년 8월
평점 :
로맨스와 스릴러가 어우러진 소설이라고 해서 혹시 로맨스에 더 중심을 둔 소설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 걱정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빠른 전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에 빠지면서 잊었다. <귀신나방>이나 <궁극의 아이>가 음모론에 기대 황당한 듯한 상상력을 극대화했다면 이번 작품은 하나의 전설을 기반으로 짧지만 강렬한 며칠을 풀어놓았다.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영화로 만들면 누가 이 역할을 하면 좋을까 상상했다. 작가가 영화감독을 꿈꾸고,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그의 소설이 얼마나 영화적 상상력을 구현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은 모두 영상으로 옮긴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10년만에 한국에 온 태경이 누리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면서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리는 낙원동을 돌면서 빈 병을 모아 고물상에 넘기는 다섯 살 지능을 가진 스무 살 노숙자다. 미혼모였던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을 한 할머니가 거두어 키웠다. 할머니마저도 5년 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누리는 밝게 웃으며 리어카를 끌고 빈 병을 모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무서울 수도 있다. 그의 미성숙을 속이는 고물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노인을 도와주면서 부치하난의 우물이란 전설을 듣는다. 할머니가 바란 것이 반쪽을 찾아 행복하게 사는 것인데 이 전설이 그의 가슴에 와 닿았다.
태경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양아버지가 겁탈하고, 엄마는 그 사실을 묵인했다.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양아버지 눈을 찔러 달아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또 다른 지옥이 그녀를 창녀로 만들었다. 이런 그녀에게 하나의 희망이 있다. 지상낙원처럼 보이는 남태평양 휴양지에 가는 것이다. 창녀를 그만 두고 달아나 하는 일이 소매치기다. 자신의 미모와 날랜 손놀림으로 그 희망을 부풀리지만 종로 등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동네에 발이 묶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전 포주에게 잡힌다. 그녀가 다시 끌려간 곳은 마약 거래를 축하하는 자리다. 그곳에서 여신의 눈물이란 45캐럿 다이아몬드를 본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다이아몬드를 훔친 후부터다.
부치하난의 우물이란 전설은 사막과 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간결하게 이 사랑 전설을 풀어놓는다. 사막 어디에서나 물을 찾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부족과 사람의 인육을 먹고 사람의 뼈로 갑옷과 무기를 만드는 부족이 나와 더 전설처럼 들리게 한다. 이 전설은 비극이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누리는 자신이 부치하난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날린 종이비행기에 실린 목걸이를 한 태경을 올라라고 생각한다. 다섯 살 지능을 가진 누리는 이성보다 감정에 기댄 말을 더 잘 한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드러난다. “사랑은 심장을 주는 거야.”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로 만들면 좋을 소설이다. 속도감, 캐릭터, 전설, 진한 사랑 등이 모두 담겨 있다. 하지만 장용민 특유의 과장된 감정이나 장면은 조금 아쉽다. 밑바닥 인생의 다양한 삶을 파편처럼 보여주지만 그것이 풍경처럼 다가올 뿐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사람의 감정을 이성으로 재단하려는 나쁜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거대한 음모론에 빠져 황당한 설정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이 소설이 더 맞다. 아직 읽지 않은 장용민의 소설 몇 권이 집에 있는데 한 권씩 도전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이 작가 정말 운명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