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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ㅣ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보랏빛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꺼풀 벗고 나면 기존의 창비시선과 닮은 모습이 나온다. 이 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집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며칠 전 겨우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시어들도 많지만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시인의 감성이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분명 오독도 많을 텐데 가슴 한 곳이 무겁다. 그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의 모습들이, 그 때문에 겪어야 했을 상황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성 정체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시집의 1부와 2부에서 가장 많이 느꼈다.
이 시집의 제목은 시의 제목이 아니다. <귀와 뿔>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성 정체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다. 성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무속 신앙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가족의 종교가 서로 갈리는 것일까? 그가 성당에 가는 이유는 신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강권이 더 큰 이유라고 분명히 말한다. 시집 속에서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은 신앙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성이 담긴 시어들은 단어들을 곱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한 번, 대충 읽은 듯해서 한 번. 이렇게 시를 읽다보면 어떤 시에서는 슬픔이란 감정이 전해지기도 한다.
“잘못이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라는 문장을 계속해서 읊조린다. 이 미묘한 말의 차이가 마음에 와 닿지만 머릿속에서는 정확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을 지우고 나서야 나는 / 웅덩이 속, / 나무를 베고 잠이 들었다”<달팽이 사육장 1>고 말할 때 그의 아픔이 가슴에 문을 두드렸다. <인면어> 속 이야기는 단순한 카스트라토 사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일이 아닐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용서>고 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것들만 고통을 준다는 / 신은 / 없다.”라고 말한다. 이 용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엄마가 시에서 자주 보이는 반면에 아버지는 그 빈도가 훨씬 떨어진다. 첫 시에 잠시 나왔다가 다시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내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제4부에 등장한 아버지는 낚시와 사냥 같은 행위의 선배 역할을 한다. “천사가 오기까지 내기해 / 눈을 감은 사람이 지는 거야 /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 누구라도 따라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여름의 캐럴> 이 시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어디서 이 슬픔이 온 것일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정말 자유롭게 형식을 변주한다. 기존 형식을 깨트리고 자신의 슬픔과 기억을 풀어내는데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관심을 둬야 할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