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버닝 룸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7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6월
평점 :
해리 보슈 시리즈 17권이다. 오랜만에 이 시리즈를 읽었다. 집에 이 시리즈 거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 시리즈가 나오길 그렇게 바랐던 순간이 이루어지자 책에서 멀어졌다. 나쁜 습관이다. 얼마 전 시리즈 초기작 중 한 권을 읽었는데 시대가 묻어나왔다. 가독성은 여전히 좋았다. 물론 이 작품도 말할 필요 없이 가독성이 좋다. 다만 초기작을 읽은 나에게 해리의 나이든 모습이 낯설다. 그리고 읽지 않은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이 또 불쑥 생긴다. 시간이 되면 올해가 가기 전 한두 권 이상 읽고 싶은데 다른 시리즈도 많이 밀려 있어 자신할 수 없다. 오래된 시리즈의 최신작들을 읽을 때면 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정년퇴직을 앞둔 해리의 모습이 낯선 것은 중간에 읽지 않은 시리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시리즈 중 한 권이 <드롭>인데 이 소설을 읽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조금은 더 낯익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딸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해리가 어떻게 미제사건을 전담하는 부서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새로운 파트너 루시아 소토를 맞는다. 범죄자와의 총격 사건으로 영웅이 된 그녀다. 새 파트너와 함께 맡게 된 사건은 10년 총격 사건으로 몸에 탄환을 가지고 있다가 얼마 전 죽은 메르세드 사건이다. 그는 마리아치 연주단의 일원으로 연주를 하던 중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탄을 맞고 불구가 되었다. 10년만에 죽었는데 해부를 통해 그의 척수에 박혀 있던 탄환을 끄낼 수 있게 되었다. 이 탄환 적출이 도입부다.
전 시장은 자신의 선거에 메르세드를 이용했고. 두 번이나 당선되었다. 메르세드가 죽은 지금 범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현상금 5만 불을 주겠다고 말한다. 경찰 담당자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다. 현상금을 노린 거짓 전화가 빗발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해리와 소토가 미제사건 담당자가 되어 사건을 파헤치려고 한다. 그런데 늦은 밤 소토가 다른 사건 파일을 복사한다. 20년 전 무허가 어린 집 아이들이 방하로 죽은 사건이다. 불법 복사다. 아직 소토가 낯설고 믿을 수 있는 경찰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녀가 왜 그 사건에 관심이 있는지 듣게 되면서 도와주려고 한다. 이제 사건은 두 개가 되고, 해리의 거짓말 덕분에 이 두 사건 모두 해리와 소토가 맡는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흔적을 따라 가면서 미제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시신의 몸에서 뽑아낸 탄환 하나가 사건 해결로 나아가는 시작점이다. 피해자가 살아 있던 동안에는 동네 갱들이 저지른 행위로 생각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그런 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추리소설 쫌 읽은 독자들이라면 대충 범인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범인상이 그려진다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확한 증거가 더 모여야 한다. 과학의 발전은 이전에 놓쳤던 증거물에 대한 자료를 새롭게 하는 좋은 기회다. 메르세드를 이용해 시장 선거에 당선된 전 시장 세야스는 이제 그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의 주지사 당선을 꿈꾼다. 소설에서 이 부분은 크게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변하는 LA의 모습을 이것으로 조금씩 알 수 있다.
소토가 복사한 미제사건은 어릴 때 소토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역시 동네 갱들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 사건 해결에 대한 그녀의 의지를 이해하게 된다. 두 사건이 교차하고, 비중이 거의 비슷하게 다루어진다. 해리가 다양한 경험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단서들 사이의 관계를 추론한다면 소토는 젊은 형사답게 인터넷과 경찰 내부의 자료 등을 통해 단서들 사이를 채운다. 탄환 하나와 기술의 진보로 CCTV의 화질을 개선하면서 알게 된 정보가 한 발 더 나아가게 한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추리력과 뛰어난 인맥이다. 당연히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노련한 형사가 왜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만약 모든 형사가 해리 같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찰도 많다. 형사가 아닌 관료가 된 경찰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 소설 속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여준다.
소토가 경험한 미제 방화사건의 단서도 경험과 대담한 추론을 통해 찾는다. 자신이 겪은 일이라 소토는 더 열심히 일한다. 소설 속에서도 작가가 말했듯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서 그 사건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시각도 이전 경찰들이 기록하고 모은 자료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담당 형사들의 기억도 좋은 자료다. 열린 자료는 소토가 찾아내고, 닫힌 자료는 해리가 자신의 인맥을 통해 얻는다. 멋진 콤비다. 이제 겨우 근무연장프로그램(DROP)이 1년 남은 해리는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해리는 몸이 먼저 움직이는 남자다. 차근차근 단서를 찾아내고, 범인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그 과정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다. 이 작품이 2014년 출간임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것 같은데 다음 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그 전에 나는 이전 작품을 더 읽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