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그물 창비시선 451
최정례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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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51권이다. 오래만에 시집에 필이 꽂혀 선택했는데 읽다가 소설들에 밀려 중단했던 시집이다. 시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중단한 것이면 이해하겠는데 아주 재밌게 읽다가 흐름이 갑자기 끊어졌다. 그 사이 시집들은 눈에서 멀어졌고, 몇 개월 만에 다시 끄집어내어 읽었던 뒤부터 시작했다. 여전히 이 시집이 마음에 든다. 앞에 마음에 든 시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지만 좋았던 느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 그때 끝까지 읽었다면 더 재밌고, 그 감정을 이 글 속에 잘 녹여내었을 것이다.


시집을 읽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단어 몇 개가 있다. 일상, 추억, 시간, 현실 등이다. 읽을 때 몇 가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단어는 이것들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산문처럼 시로 표현되는데 상당히 재밌다. <이불 장수>의 시어들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일들을 잘 보여준다. “시장에서의 현금 결제는 반품이 안 된다고 했다.”(<이불 장수>) 단지 시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그냥 그랬을 것이다. 곰팡이 코르디셉스를 끌고 와 알 수 없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삼단어법으로>에서 염소들이 나무에 올라가 있는 이유를 “올라가기 위해 그냥 / 올라가서는 / 내려오지 못해 / 매달려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장면이다. <개미와 한강 다리>에서 개미 한 마리가 한강을 휘게 할 수 있는지 묻는다. 한강이 휘는 것을 보려면 엄청난 개미들이 필요할 것이다. 시인이 주목한 부분은 이 엄청난 개미들이 아닌 개미 한 마리로 시작하는 작은 변화다. “존재의 무게가 거의 없는 것이, 생각의 무게 같은 것이 지나간다. 방금 한강 다리가 아주 약간 휘청했다.” 관념적인 관찰이지만 세상의 변화는 바로 이 부분을 인식할 때 일어난다.


<나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같은>은 인터넷 스팸 메일을 시로 재밌게 녹여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았을 그 금융사기 메일 말이다. <모래와 뼛가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억과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을 두 독재자의 거짓말과 재밌게 엮었다. <어디가 세상의 끝인지>는 졸업 삼십주년 동창회에서 일어난 과거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과 자신들만의 기억이 뒤섞여 흘러가는데 ‘우겼다’와 ‘치자’는 단어가 너무나도 낯익다. 누구나 경험한 일일 것이다. “눈도 눈썹도 검은 꽃잎처럼 깜빡이고 / 너의 손등이 내 입술에 닿을까 조바심치던 비 / 어디 가닿지 못하고 / 국지성 호우 속에 / 수십년 갇혀 있는 비”(<입김>일부)를 읽으면서 그 느낌이 가슴에 조용히 와닿았다.


“안 보이는 것은 / 보이는 것이 가린 것이고 / 보이는 것은 / 보이기로 한 것이고” (<안개의 표현> 일부)이라고 말할 때 내 삶 속의 안개들이 잠시 흔들했다. <물고기 얼굴>에서 “유사성이란 별똥별처럼 휙 지나며 눈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란 대목에 고개를 끄덕인다. <반짝반짝 작은 별> 속 두 개의 기억은 부모라면, 자식이라면 한 번쯤 느꼈을 감정이다.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된 후 자식을 낳고, 늙은 부모를 마주할 때 경험하는 일들이다. <원격조종>은 작은 미스터리가 일상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순간들의 생각과 감정이 가슴속에 작게 울린다. <1mg의 진통제>는 시인의 현재 모습일까? 단순한 경험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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