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들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전작 <다이스맨>이 조금 취향을 탔기 때문이다. 엽기적이고 기이한 행동에 내가 그렇게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상당히 많이 웃으면서 읽었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현대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날카롭고 유쾌한 비평이 아주 재미있었다. 빌리의 냉소적인 말투와 황당한 말장난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예전에 이런 실없는 농담을 보면 ‘뭐지?’하는 반응을 먼저 보였는데 이제 나도 많이 내려놓게 된 모양이다. 아니면 작가의 농담이 취향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SF소설로 분류한다. 우리가 아는 SF소설과 조금 궤를 달리하지만 FF들이 등장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이 구분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이런 분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빌리가 외계인을 만나는 과정을 보면 조금 황당하다. 비치볼 같은 모양에 은회색 털로 뒤뎦어 있는 모양이다. 바다로 버리면 다시 배로 올라온다. 나중에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이 외계인이 아이들과 놀게 되면서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람처럼 루이란 이름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 FF들이 상당히 능력이 많고 뛰어나다. 그 중 하나가 해킹 실력인데 국가정보기관 NSA를 해킹한다. 이때만 해도 빌리와 그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루이와 다른 아이들이 놀면서 한 아이가 다치고, 루이의 존재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빌리의 모험이 시작된다.


소설은 크게 빌리 모턴의 <내 친구 루이>와 루크의 보고서란 두 이야기를 기반으로 흘러가고, 그 사이에 다른 문서의 인용이나 뉴스 보도가 들어 있다. <내 친구 루이>는 빌리의 시선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적은 것이다. 내가 낄낄거리며 유머와 날선 비판에 공감한 대목들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 70대 노인이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히피처럼 산 후 멋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얻은 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외계인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모험 세계로 빠졌다. FF들이 해킹으로 부정하게 돈을 모은 기업 등에서 빼낸 돈을 돈 세탁하는데 돕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이 일을 하는 도중에 정부 기관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뭐 그 이전에 테러리스트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었지만.


이 소설 속 외계인들은 지구를 침공해 파괴하고 공포를 불러오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로 와서 재밌게 놀려고 한다. 현대 사회 제도와 행동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분석해 풀어낸다. 그들이 지닌 해킹 기술 등을 이용하면 미국이나 다른 국가를 파멸에 이끌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실제 파괴한다고 해도 다음 세대가 다시 이런 이데올로기를 재생시킬 것이란 지적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은 변혁은 한계가 분명하다. FF들이 훔친 돈으로 소상공인들을 도왔을 때 나타난 몇 가지 행위는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씨앗을 뿌리고, 그 시간이 놀이란 행위를 통해 발현하기 기다린다. 이 소설에서 진지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FF들의 ‘그냥 재미로’ 행위는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FF를 위험한 테러리스트로 분류하고, 이들을 잡아 고문하려고 시도한다. 인간의 법을 외계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법리적 문제도 같이 나오는데 재밌다. FF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분석과 황당한 소문 등은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다. 이 소설이 나올 당시 민주당이 집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몇 가지 행동은 경악할 만하다. 어쩌면 작가가 이해한 미국의 양당 제도의 한계를 적확하게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곳곳에 풍자와 농담이 흘러 넘치고, 황당한 듯한 은유와 비판을 통해 현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그리고 사실을 정보 왜곡 등으로 뒤틀어버리는 작업 등과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모습을 같이 엮은 장면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읽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우리가 몰랐거나 무시했던 사실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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