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프리 유제니디스란 이름 솔직히 낯설다. 이 작가의 소설도 처음 읽었다. 그런데 이력을 읽다 보면 낯선 제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에 끌려 사 놓은 <미들섹스>와 첫 장편소설이라는 <처녀들, 자살하다> 등이 보인다. 아마 두 소설 모두 집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찾는다고 해도 바로 읽을 가능성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이 단편집에 끌린 것은 작은 오독과 퓰리처상 수상작가란 사실 때문이다. 오독은 첫 단편소설집이 유일무이한 소설집이란 사실과 그가 아주 나이 많은 작가로 착각한 것이다. 물론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 나이에 대한 착시 효과가 생긴다. 언제나처럼 이름 있는 문학상에 약하다.


열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너무 큰 기대를 한 탓인지 약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나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했다. 섬세하게 읽어야 하는 대목도 대충 읽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놓친 부분이 많다. 늘 그렇듯이 단편들이 들려주는 간결한 이야기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쉽게 다가가면 되는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면서 재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목은 나의 잘못된 이해로 이어진 부분도 있다. 미국의 정치와 현실 문제를 이야기 속에 담고 있는데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비판을 담고 있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단편들이 발표된 연도를 보고 비교적 최근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표제작 <불평꾼들>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캐시가 델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해 자신들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이 불평꾼으로 불렸던 인디언 할머니의 이야기와 이어지면서 풀린다. 좀더 꼼꼼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놓친 부분이 많다. <항공우편>은 1990년대 동남아가 배경이다. 영적 수행이란 허상 앞에 놓인 한 젊은이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약을 먹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을 단식 등으로 고치려고 한다. 몸의 자연치유력에 대한 환상이 몽환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첼이 작가의 다른 작품 <결혼이라는 소설>에 나온다고 한다. 혹시 나중에 이 장편을 읽을 때 미첼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베이스터>는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영화 <스위치>의 원작이다. 검색해보니 원작과 다른 내용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여성의 욕망과 그 여성의 전 남친의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읽고 난 후 조금 웃었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간 것 같다. <고음악>은 자신의 전공과 현실의 금전 문제를 엮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작가가 풀어내는 고음악 정보에 놀랐다. 대중적이지 못한 예술 분야 종사자의 비애와 삶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한다는 현실이 잘 엮여 있다. 불안한 미래가 예측되지만 이 부부의 굳건한 듯한 사랑은 눈길을 끈다.


<팜베이 리조트>는 은퇴 후 부동산 사업에 몰두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사업을 펼치다 망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아버지 이야기다. 주변에 평온한 노년을 보낼 재산이 있는데도 사업 욕심에 계속 재산을 말아먹는 어른들이 있다. 그 열정에는 감탄하지만 그들의 판단력에는 의문 부호를 던질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람 찾기>는 그린카드 이야기에서 술 등으로 자신을 몰락시킨 남자 이야기다.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긴 남편의 회상기가 풀어져 나오는데 노골적인 표현과 위트 넘치는 대화가 눈길을 끈다. 엇갈린 부부의 생각과 행동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탁의 음부>는 황당하고 놀라운 부족 이야기를 문을 연다.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야 많은 문화에 있는 것이라고 쳐도, 여덟 살 소년들을 엄마의 품에서 떠나게 한 후 어른 남성들의 구강 성교 도구로 삼는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아이들이 이 일은 반복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와 함께 성별과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들섹스>의 토대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자극적이지만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들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변화무쌍한 뜰>은 네 남녀의 심리와 행동이 쉽게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오해와 엇갈린 욕망 등이 조용히 표현되는데 좀더 섬세하게 읽었어야 했다.


<위대한 실험>은 아주 정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 문제가 엮여 있다. 작은 인문 서적을 내는 출판사에 일하는 편집자가 의료보험료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는 데 읽다 보면 불안감보다 약간의 통쾌함을 느낀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위대한 실험의 의미를 돌아본다. <신속한 고소>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영국 과학자와 인도계 미국 소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감을 쉽게 잡지 못했는데 뒤로 가면서 앞에 풀어낸 이야기들이 하나의 설정으로 변하면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인도 소녀가 느낀 문화 충돌과 중년 남성의 일탈이 엮이면서 한 편의 멋진 스릴러처럼 이어진다. 사실 이 단편을 읽고 난 후 이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