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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맨드 -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5월
평점 :
2021년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말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문학상 수상작들을 좋아한다. 가끔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좋았다. 이 작품도 결론만 먼저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건과 겹치고, SF적 상상력이 나의 예상과 달리 큰 발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여러 편의 SF 소설이나 판타지의 설정들이 떠올랐는데 그 소설들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순간적으로 아주 마음에 와 닿았다.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은 로봇 산업을 주도한다. 이곳에서 만든 어시스턴트 로봇들은 구매자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로봇을 구매해 자신의 삶이 좋아졌다. 한 명은 새로운 서비스 분야의 진출 때문에 계속해서 밀려난 업종에 종사하는 영기다. 영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로봇들의 뛰어나고 정확하고 빠른 문장 교정 때문에 대학에서 잘렸고, 배달업체에서 일하는 지금은 IU의 무인배달 로봇 때문에 또 직장을 잃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이들이 집회에 모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곳에서 반IU 단체인 휴먼 라이츠의 도정우를 만난다.
하정은 동업자와의 다툼으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진다. 그녀에게 엘비는 자신의 행동 패턴 등을 파악해 알아서 일하는 멋진 조수다. 그런데 이 엘비가 반려묘 람시를 굶어 죽였다. 왜 지시한대로 밥을 주지 않았을까? 우서운 것은 IU가 엘비에 대한 무오류를 지적하면서 인간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경찰에 신고해도 로봇을 구속할 방법이 없다. 집에 있는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IU와 논쟁을 벌이고,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그녀의 사건에 도정우가 관심을 가지고 엘비를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말하는데 어느 날 엘비가 사라졌다. 원칙적으로 엘리는 IU의 중앙통제소에 동기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IU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김승수는 화가다. 아티스트 계열 로봇 그리드를 조수로 쓴다. 그의 밑에는 조수 화가가 네 명 있었는데 그리드의 발전이 이들을 자르게 한다. 그 중 한 명이 김승수의 그림은 그리드가 그린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검찰은 화가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 이 사건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너무 빤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조영남 사건이다. 소설은 현대 예술계의 창작의 원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이것과 별개로 화가는 그리드가 필요하다. 노쇠한 육신을 대신해 자신이 바라는 대로 그림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로봇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영감에 더해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검찰의 기소로 그리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로봇이 오는데 기존의 그리드와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IU에서 판매한 로봇들은 각 고객의 정보를 모아서 보낸다.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도 같이 전송된다. 이런 정보들이 모여 나중에 IU에 대한 클레임을 막는 방패로 사용된다. 이런 불법적인 정보 수집보다 작가의 시선이 간 곳은 로봇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장면과 인간을 없애려는 IU 의장의 의지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것을 추억과 감정으로 규정하고 단순히 데이터의 전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억의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이미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고 그 감정도 담아 놓고 있다. 작가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의 감성을 내려놓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이 충돌을 만든다. 공존보다는 한쪽의 소멸로.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하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이런 통제가 불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람들의 단순한 노동을 대체하고, 이익에 기반한 일들을 좀 더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현실에서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장르에 낯선 독자라면 작가가 풀어내는 미래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을 테지만 이런 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에겐 아쉬운 대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만약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하는 상상을 먼저 한다. <터미네이터> 속 반군이 생길까? 아니면 다른 전개일까? 묵시론적인 상상력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런 영화 등이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